제2장 흙바람 4회

  • 입력 2014.01.26 21:22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택이 늬도 그런 데 따러댕기는 거 아니지? 당최 으른덜 몰려다니는 데 꽁무니 따러댕기믄 안뒤야, 알겄지?” 할아버지는 불 꺼진 장죽을 놋재떨이에 땅땅 때리며 다짐을 두었다.

“왜유? 어제넌 그 뉘유? 배급표 나눠주던 명자 아부지, 그 집에 가서는 돌팔매질루 기왓장얼 막 들깨부시구, 삽짝두 다 넹겨버리구 그런 재미난 귀경이 읍던걸유.”

“어허, 으른이 시키믄 예에, 허고 대답을 해야지, 상눔들겉이 왜유,가 뭔고? 늬눔 종아리가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예에, 잘못했어유. 고만 주무시게 불 끌까유? 할아부지 말씸대루 인제 안 쫓어다닐께유.”

호롱을 덮어 불을 끄고 난 후에도 선택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패를 이루어 몰려다니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는 건 여간만 재미난 게 아니었다.

해방 전에는 어디에 엎드려 있었는지 젊은 사람들 보기가 어려웠는데 갑자기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친일파들을 심판한다고 몰려다녔다. 해방된 지 벌써 달포가 지났는데도 젊은이들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그 중에는 눈에 익은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낯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장서서 꽹과리를 치고 다른 이들을 이끄는 사람은 선택이 아는 이였다. 바로 선택이 다니는 국민학교에서 소사로 있던 이였다. 선생님이나 사람들이 그냥 이씨라고 부르던 그 젊은이는 한쪽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 뻗정다리였다. 그래서 일본놈들이 젊은이들을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어갈 때 끌려가지 않았다고 했다.


“늬가 굄골 사는 대환이 조카란 말여? 그럼 아부지넌 정 짜, 허고 대성이겄구나. 많이 닮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선택을 일부러 찾아와서 삼촌과 아버지를 들추며 아는 척 했다. 그 뒤로 마주칠 때면 씩, 웃어주곤 했지만 선택은 되도록 그를 피하려 했다.

말쑥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그는 어딘지 못나고 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중에도 특히 변소의 똥을 푸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지게 양쪽 똥장군에 가득 퍼 담은 누런 똥물이 걸을 때마다 튀어 올라 그의 옷이며 얼굴까지 똥칠이 되었다. 오른쪽 다리가 뻗정다리라 아래위로 지게가 요동을 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똥을 치기 시작하면 내처 사나흘이 걸렸다. 그 동안에 변소에 가려면 냄새가 왕등해서 코를 싸쥐어야 했다. 이씨는 똥지게를 지고 한참을 걸어서 학교에서 만든 공동 퇴비장으로 날랐다. 그 곳에서 두엄으로 쓰기 위해 베어둔 갈 위에 똥물을 쏟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며칠 동안 똥을 푸던 이씨가 큰 사건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학교에는 일본인 교장이 애지중지하는 연못이 세 개 있었다. 마을의 저수지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였는데 그것을 또 셋으로 나누어서 각각 다른 물고기들을 키웠다. 사면을 돌로 쌓고 연못가에 꽃나무들을 심어서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정원 같았다.

교장은 학교보다 그 연못을 가꾸는데 더 신경을 썼고 버젓이 학교 안에 있는 연못이면서도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다만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청소 당번들 네댓 명만 연못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호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게 연못에는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던 것이다.

선택은 겨우 이학년이라 청소 당번이 돌아오지도 않아서 멀찍이서 연못을 구경한 게 다였다. 교장은 말이 없고 특별히 무섭게 굴지도 않았지만 연못에 가까이 가는 것은 커다란 금기였다. 꽃나무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가 유령처럼 앉아있는 교장을 보고 놀라서 도망친 이야기들이 아이들 사이에 떠돌았다. 교장 얼굴이 사람이 아닌 괴물로 변해있었다는 둥, 교장이 무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먹고 있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씨가 똥지게를 지고 연못가를 지나가다가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똥장군 두 개가 고스란히 연못 속으로 흘러드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