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남편과 함께 온 매생이로 탕을 끓인다

  • 입력 2014.01.19 20:57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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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 문상 갔다 이틀 만에 돌아온 남편이 몸보다 먼저 흰 상자를 불쑥 들이밀고 뒤따라 들어온다. 매생이 덩이가 족히 스무 개는 되나보다. 고향이 완도라는 걸 기억하고는 있지만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살다보니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갯가 음식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계절을 넘기기 일쑤다. 그러니 아마도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매생이탕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겨울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고 사들고 온 것일 게다. 몸과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자리보전하고 눕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던 터라 남편이 돌아오면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방식대로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으로 있었는데 매생이 세례라니, 이 많은 매생이를 어쩌라는 것이냐고.

매생이를 보는 순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산골에서 지표수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겨울 찬물에 대한 공포가 매생이 한 덩이의 그 가녀린 터럭 숫자보다 더 큰 숫자의 강도로 전달된다. 지표수의 찬물로 여러 번 헹궈 탕을 끓여야 하는 내 고통이 이미 체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침 발라가며 빗질을 한 여인의 머릿결 같은 염전함으로 위장한 매생이가 밉고, 매생이를 들고 온 남편은 더 밉다.

하지만 몸이 천근이라 궁시렁거리지만 육지사람 만나 먹고 싶은 음식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사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니 저녁거리로 매생이탕을 끓였다.


‘바로 뜯은 생생한 이끼’ 매생이는 <자산어보>를 통해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 길이는 몇 자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미끄러우며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기록되어 전해진다.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빽빽하다는 말은 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손질하기가 무척 귀찮고 어렵다는 의미이다. 찬물에 매생이를 넣고 살살 흔들면서 씻되 수채 구멍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영아를 다루듯 매생이를 씻는다면 유아를 다루듯 소금물에 굴도 씻어 놓는다. 대파와 마늘도 조금 준비하고 참기름 병도 미리 챙겨 두어야 한다. 굴도 매생이도 오래 끓여 좋을 것이 없는 식재료이다. 더구나 다시 데워서 먹으면 특유의 맛과 향이 없어지므로 절대 금물이다. 그러므로 밥상을 차릴 때는 마지막 작업으로 꼭 한 번 먹을 만큼만 매생이탕을 끓이는 것이 좋다.

눈 쌓인 깊은 산속의 겨울 밥상에 바다가 올라앉았다. 후우, 후우. 후루룩, 후루룩. 빡빡하게 끓인 매생이탕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려 숟가락에 얹은 다음 뜨거운 걸 알기에 후후 불어가면서 먹는다.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입안을 통해 속으로 들어가니 콧등에 땀이 나다가 오장육부까지 덥혀지는 것 같다. 어느 사이 미운 남편에 대한 마음도 덤덤해지고 찬물에 손 담그고 끓이던 고단함도 잊는다. 그리고 땀 흘리며 한 그릇 먹고 나니 몸도 가벼워지고 팍팍하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식이섬유가 많고 칼로리는 적어 몸에 좋다고 한다. 철분, 칼륨, 요오드, 칼슘 등이 풍부하다고 한다. 숙취해소에도 좋다고 하고 여기에도 좋고 저기에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과로로 뭐든 다 포기하고 싶은 어느 하루엔 매생이탕 한 그릇 어떠냐고 권하고 싶다. 효능이니 건강이니 그런 거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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