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을 때 돌산갓김치로 위로받기

  • 입력 2013.12.15 21:43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에 갓은 청갓과 붉은갓 두 가지 뿐인 줄 알던 나에게 갓에 대한 새로운 눈이 뜨인 날이 있었다. 결혼 초였는데 여수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이 선물이라며 내놓은 것은 평소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굵고 큰 갓으로 담은 김치였기 때문이었다.

입에 넣자 코끝을 타고 정수리까지 뻗치는 톡 쏘는 매운 맛을 느끼게 해 준 그 갓김치는 나에게 전혀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 해주었다. 한 마디로 눈물이 쏙 빠지는 매운맛이었지만 혀만 자극하는 기분 나쁜 매운맛이 아니라 뭔가 속에 웅크리고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항돌연변이의 효과가 있는 십자화과 식물 중의 하나인 갓은 따뜻한 성품을 가진 재료다. 갓이 가진 따뜻한 성질과 매운맛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폐와 소화기를 돕는 역할을 하므로 특히 날이 차가운 이때 갓을 이용한 음식을 해먹으면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갓의 따뜻한 매운맛은 급만성기침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담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방광결석과 소변불통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채소류 중에서는 비교적 단백질이나 칼슘, 인, 철분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와 C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갓의 종자에 함유된 시니그린은 미로시나아제에 의해 머스터드오일이 되어 특유의 향과 매운맛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향신료로 사랑받고 있다.

며칠 전 김장을 했다. 텃밭에 심었던 갓은 뽑아서 김장 속 버무리는데 넣고 남은 것 조금은 제철 과일인 사과와 배를 넣고 물김치로 담가두었다. 여수의 지인으로부터 온 돌산갓도 마침 도착하였기로 김치를 담갔다. 현지의 생산자들이 담는 방식은 잘 모르나 내 나름으로 한 통 담가 놓으니 반찬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다.

동치미나 갓물김치는 잘 익으면 국물과 함께 떠내서 국수를 말아 먹으려는 생각으로 지금부터 들뜨게 하고 김치말이 아니라도 탄산음료와는 다른 국물의 청량감을 어서 빨리 느끼고 싶어 안달을 한다.

하지만 돌산갓김치가 주는 소통의 느낌은 또 다르다. 하는 일의 불통이든 사람사이의 불통이든 불통으로 답답하던 것이 통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시원함을 경험하였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먹을 때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전국에 눈이 왔지만 지리산 골짜기에는 며칠간 더 많은 눈이 왔다. 택배도 오지 않고 오기로 한 사람도 오지 않는다. 밖에 일을 보러 나가야 하는데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올 겨울엔 여느 해와 달리 눈이 더 많이 온다 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울고 싶지만 이런 일로 울 수도 없고 답답하다.

아침밥상을 차리며 김장할 때 같이 담갔던 돌산갓김치를 서너 줄기 꺼내 썰어 놓았다. 밥도 뜨기 전에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갑자기 찾아오는 찡한 매운맛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마도 눈 때문에 불편한 스트레스로 울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조금 불편하나 지리산이 내게 주는 그 많은 행복에 비하면 눈물 한 방울의 가벼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