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38회

  • 입력 2013.12.06 17:49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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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중국하고 에프티에이가 어뜨케 될지도 모르는 판에 자꾸 농사에 돈을 들였다가 절딴이 날 수도 있을 거 같어. 인제 해먹을 작물이 없어.” 드럼통을 잘라 만든 통에 물을 받고 불을 피우고 나서 준석이 담배를 빼어 물었다. 포대를 풀어 생석회와 유황을 풀고 젓는 일은 정용이 맡았다.

“정말 형님 말씀이 맞아요. 돈 되는 작물이 없으니까 자꾸 이리저리 몰려서 돌아가면서 폭락을 하잖아요? 그거 언제죠? 우리 면에서 복숭아 과수원 다 갈아엎던 게. 칠렌가 어디하고 에프티에이할 때죠? 폐원 보상금 준다고 하니까, 다 갈아엎었잖아요. 제가 알기론 복숭아 작목반이 거의 스무 명이 넘었는데 지금 면내에 복숭아 농사짓는 사람은 네댓 명도 안 될 걸요?

사실 그 때 농민들이 에프티에이 반대 투쟁을 엄청나게 해서 폐원 보상금을 많이 준 편이긴 했죠. 너도나도 다 그 돈 받고 없애버렸으니까. 근데 결국 과수원 하던 사람들이라 그 밭이 다 사과로 바뀌었어요. 형님, 작년 복숭아 값 아시죠? 사점 오 킬로 한 박스에 사만 원이 넘게 나왔다니까요. 그거 서울에 돈 많은 사람들이나 사 먹지, 서민들이 구경이나 하겠어요?”

“작년에 복숭아 값 좋았다고 얘기는 들었지. 폐원한 과수원도 많고 또 몇 해 연속 겨울이 워낙 추워서 동해를 받은 나무가 많아서 그랬다더먼. 그래두 사만 원씩 나온 거야 얼마 되겠어? 그렇게 값이 좋으면 농사가 제대로 안 됐다는 거니까 농사짓는 사람들 손에 들어오는 건 늘 그게 그거여.”


“그렇긴 합죠. 제 친구 중에, 덕곡 사는 중길이가 복숭아 농사 꽤 크게 짓잖아요. 걔 말로는 워낙 나무가 시원찮아져서 열 박스 따던 나무에서 두 박스 건지기도 어려웠다 하더라고요. 원, 지구가 온난화가 된다나 뭐라나 날마다 지랄을 떨더니 갈수록 더 추워지니 이건 우리 머리로는 알 수가 없는 조화속이라니까요. 안 그래요? 참, 형님 농도계 있어요?”

유황합제는 농도를 맞추어서 끓이기를 멈추어야 하기 때문에 유리 대롱처럼 생긴 농도계를 물속에 넣어 수시로 재어야 한다.

“가만 있자, 농약사에서 공짜로 하나 챙겨줬는데, 차에 있나.” 준석이 차로 가서 농도계를 찾아오는 동안 아내가 돼지고기와 김치를 쟁반에 받치고 내왔다.

“벌써 때가 되었나요? 형수님, 별고 없으셨지요?” 정용이 아내를 살갑게 대하는 것은 아내의 친정이 정용이 사는 동광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내를 어릴 때부터 동네 누이처럼 보고 자랐던 것이다. 동광리는 준석이 사는 시곡에서 근 삼십 리나 떨어진 곳이다. 그러니까 산동면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라고 할만 했다.

“시은 아빠도 잘 지냈지요? 작년에 농사 잘 지었다고 소문이 자자 하대. 지난 장인가 시은 엄마 만났는데, 농사짓는 사람 같지 않고 도시 사람 같더라고. 얼굴도 안 탔고.”

“제가 잘 모시고 삽지요, 히히. 얼굴이야 일 년에 일하는 날이 며칠 안 되니 탈 새도 없지요. 저만 죽어나요.”

“왜? 시은 엄마가 억척으로 일 잘 하는 줄 내가 아는데.”

“재작년부터 애들이 다 시내로 나갔잖아요. 죽어도 중학교는 여기서 못 보낸다고 고집을 부려서 할 수 없이 시내에 세 얻어서 보냈는데, 그것들 땜에 애 엄마가 거의 매일 시내에 나가 있어요. 요새 애들이 뭘 할 줄 알아야죠? 졸지에 제가 홀아비 신세예요.”

“그랬구만. 난 몰랐네. 그럼 그 과수원 농살 다 어떻게 해?” 정숙도 친정 동네 사는 동생뻘쯤으로 여기는지 무람없이 말을 놓고 있었다.

“전보다 사람을 더 많이 쓰지요. 나무도 많이 컸으니까. 근데 동네에 일하던 분들은 다들 돌아가시고, 나이가 들어서 시내 용역에서 불러다 쓰는데, 아주 죽을 맛이에요. 시내 사람들이라 그런가 얌통머리가 없더라고요.”

참나무 장작이 빨간 알불이 되어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정용의 말에 몇 해 전에 차례로 세상을 뜬 친정 부모 생각이 나는지 대거리가 이어지던 정숙의 새가 떴다. 준석이 어험, 하고 괜히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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