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 둥지 투쟁기

  • 입력 2013.12.06 17:46
  • 기자명 한도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제 몸을 뉘여 휴식하고 제 새끼를 낳아 기르는 집, 보금자리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원시시대 움막에서 현재의 아파트라는 건조물까지 인류의 집짓기는 고난의 연속이었고 먹이와 함께 삶의 투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동고비란 새는 참새처럼 작은 몸집의 우리나라 텃새다. 주로 참새 같은 작은 새들은 따로 둥지를 틀지 않고 숲 덤불이나 초가지붕 틈 같은 곳을 보금자리로 마련해 겨울을 난다. 동고비는 주로 딱다구리 수컷의 둥지를 찾아 제 몸이 들어갈만 하도록 입구에 진흙을 발라 좁혀 제집으로 삼는다. 이는 거저 얻거나 빼앗은 것이 아니다. 피눈물 나는 투쟁의 결과다.

동고비가 집을 짓는 시기가 요즘이다. 딱따구리가 쓰다버린 빈집이면 금상첨화로 입구만 좁히면 딱따구리건 뭐건 걱정 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진 집은 많지 않다. 동고비는 딱따구리 수컷이 먹이 사냥을 나가면 둥지에 주인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입구에 진흙을 발라 나간다. 저녁이 되면 딱따구리가 돌아와 몇 초 만에 입구를 허물어 버리지만 동고비는 포기하지 않고 아침에 딱따구리가 집을 비우면 다시 공사를 시작 한다.

그러기를 수 십 차례 반복 하지만 동고비는 멈출 줄을 모른다. 짓고 부수고... 동고비가 계속 그런 투쟁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딱따구리가 신방을 차리면 숫딱다구리가 암컷둥지로 가기 때문이다. 둥지가 비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동고비의 투쟁기는 계속 되는 것이다.

농민들이 국회 앞에 둥지를 틀었다. 올 겨울을 거기서 나더라도 반드시 쌀 목표값 23만원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둥지를 트는 것도 동고비만큼이나 힘들었다. 짓고 부수고를 경찰들과 몇 차례 주고받다가 겨우 밤에 이슬을 가릴 정도의 그야말로 허름한 둥지를 갖게 된 것이다. 둥지는 누구에게나 간절함이다. 먹고사는 간절함을 지탱하는 휴식과 번식은 안정적거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우 비를 가릴 수 있는 둥지이지만 농민들은 땅을 갈고 씨앗을 넣기를 반복 한다. 그것이 희망 없는 일인 것처럼 보여도 그 것 만한 희망도 없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일으킨 보이지 않는 희망이 거기 있다. 현 정권의 무지함으로 희망이 가리워진 듯 하지만 결국 인류의 희망은 농업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동고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농민들의 여의도 둥지 투쟁기는 그런 간절함이 배어있다. 비록 비닐 한 장을 올려놓는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박근혜정권 앞에서 농민들의 투쟁의지는 더욱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가 공전을 하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 쌀목표값 23만원에 말 한마디 못하는 상태가 돼도 농민들의 집짓기는 계속 될 것이다.

동고비가 언젠가는 딱따구리가 집을 비울 것이라는 희망을 갖듯이 농민들도 언젠가는 농민들의 요구가 관철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