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블러 로스의 5단계

  • 입력 2013.12.02 00:50
  • 기자명 서정욱 안성농민한의원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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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블러 로스라는 심리학자는 임종을 맞이하는 말기환자들을 오랜기간 연구하여, 죽음에 이르는 정신상태를 5단계로 구분하였다. ‘부정 ·분노·거래·좌절·수용’ 의 5단계는 꼭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암이나 만성질환, 난치병 등의 진단을 받아들이는 환자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1단계 부정(denial)에서 많은 사람들은 단 한번의 진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검사가 잘못 된 건 아닐까? 의사가 실수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검사하고 확인하고 심한 경우에는 모든 의사들이 다 짜고 나를 골탕 먹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거부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부정은 보호자들에게도 흔히 일어나는데,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 중에서는 “우리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니야. 금방 다시 좋아지실거야”라는 생각에 치료를 거부하고 오히려 환자를 더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다.

2단계 분노(anger)에 이르면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에 분노와 원망으로 바뀐다.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건 너희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가족이나 사회 전체에 적의를 드러내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3단계 거래(bargaining)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이며 밝은 모습을 보이고, 이리저리 빠져 나갈 방법을 찾는다. 주위의 온갖 좋다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다 하게 되고,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서 내가 이렇게 열성으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종교적인 귀의를 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다거나, 새로운 생활패턴을 가진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시도들과 건강을 바꾸고 싶어한다.

4단계 좌절(depression)은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효과 없이 계속 진행되는 병세를 보면서 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결국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생각에 치료를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남겨질 가족들이나, 일들을 걱정하면서 우울증을 겪는다.

5단계 수용(acceptance)의 마지막 단계는 이러저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후에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노력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있게 된다.

이 단계들을 잘 살펴보면 1, 2 단계에서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감정 상태인 반면 3단계에서는 긍정적이고 밝은 면으로 바뀌게 되고 4단계에서는 다시 의기소침한 상태가 되었다가 5단계에서는 평온한 상태가 된다. 전반적인 감정상태나 생활태도가 부정-긍정을 되풀이 하면서 결국 안정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때문에 가족들은 환자가 우울에 빠져 있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도 없고 밝고 쾌활하다고 너무 좋아할 필요도 없이 이 모든 과정을 여유 있게 지켜 보면서 그때그때 환자를 지지해주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말기암처럼 전체적인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이 단계들의 진행 속도도 빨라서 몇 달만에 수용의 단계에 이르기도 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몇십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에는 진행속도도 느려서, 몇 년째 치료를 거부하고 우연히 좋아지기만 바라고 살기도 하고, 주위에 대한 오랜 원망으로 정서적인 지지를 몽땅 잃어 버리기도 한다.

개인 차이도 많아서 정신적으로 강건한 사람들은 하룻밤만에 위의 5단계를 모두 거치고 다음날부터는 수용적인 태도로 건강한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몸은 병들었더라도 다른 모든 생활과 마음을 훨씬 나은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환자 스스로가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처해 나간다면 가족과 환자 모두에게 훨씬 건강한 투병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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