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철 열사 8주기에 부쳐

  • 입력 2013.12.02 00:39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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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철 열사가 유명을 달리한지 8주년이 됐다. 전용철 열사는 2005년 겨울 삭풍이 우는 여의도에서 쌀개방이 농민을 죽인다며 쌀개방 반대를 외치다가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열사의 죽음은 당시대 농업의 위기를 온몸으로 말했고 이젠 역사가 되었다.

열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여느 농부의 아들들과 다르지 않게 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살며 산업사회의 모순을 체험하고 농민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농업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기 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만큼 당시 농업현장은 개방농정의 여파가 휩쓸고 있을 때였다. 열사의 현실인식은 바로 농민운동으로 몸을 던졌고 공권력은 그를 제물로 삼아 개방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열사가 원하던 쌀개방반대는 외침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많은 농민들이 정부의 농업개방정책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농민들의 처지는 더욱 좁아지고 목소리의 크기도 작아졌다. 그동안 추진한 개방농정의 결과로 이제 농민들은 경각에 달린 명줄을 붙들고 가뿐 숨을 내쉬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WTO, FTA, TPP까지 농민들은 전방위로 내몰리고 있다. 양파에서 마늘로 마늘에서 고추로 배추로 이어지는 가격폭락에 정부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농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이는 세계화라는 산업세력들의 몫이 더 커지도록 하기위한 정책 때문이다. 결국 우리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로 이행하고 농민과 같은 약자들은 더 이상 이 사회의 일원임을 부정당하고 있다.

지금도 국회에 계류중인 쌀목표값 인상안이 표류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농민은 이미 국민이 아님을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물가인상과 농자재비의 인상만큼이라도 쌀 목표값에 반영해야 하는데 정부의 계산기는 아무리 두들겨도 17만4천83원에 머무르고 있다. 농민값이며 농민의 목숨값인 쌀값의 목을 조이는 것은 농업생산에 대한 산업적 가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열사가 지키려 했던 쌀개방 반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업이 농민이 고사하고 나면 이후 100년은 식량수입국이 될 것이며 이를 회복 하기위해 후손들이 부담해야할 몫이 몇 배 더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회는 하루빨리 농민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쌀목표값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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