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난 ‘굿’판이었나

  • 입력 2013.11.24 20:59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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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수가 끝나면 고사를 지낸다. 붉은 팥을 켜켜이 깔고 무를 채썰어 넣은 고사떡과 돼지머리를 놓고 하늘에 감사한다. 풍년이고 흉년이고를 가리지 않고 해마다 일을 치렀다. 그리고 풍년이 들어 좀 넉넉해지면 당골네를 불러 쇳소리를 울렸다. 즉 ‘굿’을 했다는 말이다.

이 모든 행위를 미신이라고 배웠다. 일제강점기부터 그렇게 가르쳐 왔단다. 미신이란 말은 종교적 보편성이 없는 것을 따른다는 뜻과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것들을 믿고 따른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가 배운 미신은 후자인 듯싶다.

그런 미신을 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못마땅했다. 그래서 심부름도 안하고 음식도 께름칙해서 잘 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속상함을 누르고 어린 나를 달랬다.

머리가 커지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굿하는 사람도 없고 이제 예술적 명분으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는 굿판의 여러 모습이 아쉬워졌다. 아니 그리워졌다. 작두날을 타고 춤을 추던 당골네의 모습이 신비했던 그런 날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미신이라고 배운 것은 민족혼의 말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대한민국도 미신으로 규정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니 엄청난 철학과 실천이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우선은 하늘(천명)에 대한 경배의식이다. 하늘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근신의 철학이다.

둘은 부의 사회적 나눔과 공유로 본다. 가을 고사떡은 여럿이 나눌수록 좋은 것이라며 오리길을 마다않고 떡을 돌리는 모습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굿은 훨씬 더 큰 판이다. 주로 굿은 부자들의 재수굿이나 진혼굿이 제격이다. 근동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당들의 춤과 노래를 구경하며 신명을 함께 나눈다. 또 남는 것은 보따리 보따리 나누어 보내기도 한다. 이런 날 배고픈 사람들은 잔치날이다. 굶주린 들짐승 날짐승도 허기를 면하는 좋은 날이다.

그러니 굿판이나 고사가 미신이라고 밀어 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부의 분배랄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나눈다는 의미에선 미풍이며 양속이랄 것이다.

오래전에 존경해 마지않는 저명한 분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소리지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그분은 이세상의 모순을 바로 잡으려하는 사회운동을 굿판으로 인식하신 게다.

걷어치우라는 분노는 옳다고 느끼지 않지만 집회와 시위 등의 행위를 ‘굿’이라 한다면 동의한다. 굿이 지난 시절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내는 것이었기에 그런 비유는 적절한 것이라 본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민들의 굿판이 벌어졌다. 시청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하늘의 순리대로 내년에도 농사짓고 살겠다며 선언하는, 하늘에 알리는 굿판을 벌인 것이다. 모두가 함께하는,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는 농사가 되게 해달라고 신명난 굿판을 벌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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