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정권과 공안 정권 사이에서

  • 입력 2013.11.22 13:23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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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종 서울대 교수
가을의 풍성한 시간을 뒤로 하고 초겨울의 스산함으로 주변이 채워져 간다. 볏짚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거나 볍씨를 선별해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던 과거와 달리 농촌도 비닐하우스 채소 재배 등으로 한가한 것도 아니다. 돌이켜보면 기계화나 자동화 등으로 필요한 농촌 일손이 줄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그다지 시간이 더 많아지고 여유로워진 것도 아니다.

물론 이런 상황은 농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상황이기도 하다. 다양한 공약이 난무하고 마치 사회의 머리 아픈 일들은 모두 해결되어 금방 살기 좋은 상황이 될 것 같았던 대선 선거철이 겨우 1년 전인데, 당시의 많은 공약은 그야말로 빈 약속이 되어 이제 희망과 기대를 접어야 한다. 그 공약들은 단지 유권자의 표를 유혹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구조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당연히 받아야할 제 몫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이들마저 스스로 속는 줄도 모르고 자신들을 착취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고 선출하였다.

지금은 단지 기대를 접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정황을 보면, 중립을 지켜야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여 국가의 민주 헌정질서를 파괴하기도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나 입장 표명은 불손한 사상이 의심스러운 인간이나 집단으로 몰아버리고는 가차 없이 제거하고 있다. 의도적인 공안정국의 등장이고, 건강한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의견에 대한 철저한 핍박이다. 국민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나 정당 자체를 종북 논리 하나로 하루아침에 없애려는 집권정당의 모습을 보면, 사회약자의 소리가 존중되기보다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자이기에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한편, 최근 전형적인 부실공사 사례로 남대문 복원사업이 있다. 이명박 정권 시작과 함께 방화로 소실된 남대문 복원 사업은 복구 예산 250억원 중 10%에 가까운 24억을 홍보비로 소비하였으나, 정작 복원에 중요한 재료비는 6% 정도였고, 목재비는 1%, 단청비는 0.5%도 안되게 사용되었다. 결국 마무리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기둥과 추녀 목재는 갈라지고 단청은 떨어져 나갔다. 부실 자재와 졸속 공사 등에 대한 감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요란했던 그동안의 대국민 홍보 행위는 국정감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전형적인 부정 비리 부실공사인 4대강 사업이나 2008년도에 광우병이 5년 내로 사라진다는 식의 정부 괴담과 함께 그토록 홍보한 미국쇠고기 수입조건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식의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했던 이명박 정부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내세우면서 한·미 FTA와 한·EU FTA를 마무리하고 한·중 FTA에 박차를 가하면서 농업과 농촌을, 농민의 삶을 서서히 파괴해왔다. 이제 그러한 이명박 정권의 맥을 잇는 현 박근혜 정권은 집권 1년도 안되어 과거 70, 80년대의 공안 정국을 불러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수사와 연관되어 채동욱 검찰총장은 잘려 나가고,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조작사건의 특별수사 팀장이었던 윤석렬 지청장도 속절없이 수사팀으로부터 제외되어 징계마저 받게 되었다. 집권 초기부터 유신잔재를 끌어 모으고, 색깔론으로 공안 정국을 조성하면서 너무도 뻔뻔스럽게 반대성향의 인사를 도끼로 잘라내듯이 쳐버린 것이기에, 민주사회에서 존중되어야 하는 가치인 사회 다양성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생각해보면 과도한 홍보 속에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부실인 남대문 복원사업의 모습은 정권이 벌인 대국민사기극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을 ‘남대문 정권’ 내지 ‘4대강 정권’이라 말한다면, 공안정국을 연출하면서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드러내놓고 찍어 내는 현 정권의 횡포는 ‘도끼 정권’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대문파가 물러나니 도끼파가 눈앞에서 국민을 노골적으로 바보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쌀 관세화 문제나 지지부진한 쌀목표가격 협상 등에서 농업인들이 감히 무언가를 요구했다가는 이제 좌익 빨갱이로 몰릴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지난 정권에 이어 현 정권에 있어서 농업은, 농촌은, 농민은 과연 어떤 대상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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