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35회

  • 입력 2013.11.15 15:4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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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할 말을 했냐? 왜 성질부터 내고 그래? 엄마도 있는 자리에서 따질 건 따져보자. 아니 할 말로 지금 엄마 앞으로 되어 있는 땅 오천 평은 결국 우리 삼형제한테 오는 거 아니냐? 요즘은 상속법이 큰 아들이고 막내고 없이 똑같이 돌아간다고 하더먼.

그런데 그 땅에 누가 먼저 손을 대면 그건 아니지 않냐? 넌 농사지어서 갚는다고 하지만 그게 맘처럼 안될 수도 있고. 글고 땅을 담보로 잡히는 거 같이 큰일은 우리하고 상의를 했어야지. 내 말이 틀렸냐?”

흥분한 경태를 보고 움찔한 경철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지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따지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옆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던 경수도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이더니 한 마디를 보탰다.

“넌 언제 상속법까지 알아봤냐? 나도 맏이나 지차나 다 똑같이 상속된다고는 들었지만, 그거야 법적으로 그런 것이고, 엄마가 이래저래 상속을 한다고 그 뭐냐, 유언장 같은 걸 만들어 놓으면 그게 우선되는 거라던데.”

이건 또 무슨 복병인가 싶은 얼굴로 경철이 제 형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찬샘댁은 찬샘댁대로 경수 입에서 유언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벌렁대던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형은 또 갑자기 무슨 말이야? 맏이라고 더 몫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뭐야? 솔직히 우리 셋 중에 사립대 나온 사람은 형뿐이야. 나는 형한테 치어서 전문대 나오고 경태도 국립대로 갔지. 집 살 때도 아버지가 형한테 제일 많이 대준 거 알면서도 아무 말 안 했는데, 이제 남은 땅도 더 몫을 쳐달라면 너무 한 거 아냐?”


“그게 무슨 말이냐? 법은 법이고 그런 것도 있다는 말이지, 내가 언제 장남 몫을 달라고 했냐?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늬가 공부를 안 해서 전문대 간 걸 나한테 치어서 그랬다고 하면 안 되지. 지금 돌아보면 전문대 나온 늬가 젤 잘 되지 않았냐?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뭔지도 모를 때 내가 그쪽으로 가게 해줬잖냐. 그래서 성공한 거고. 나보다 훨씬 잘 사니까 아버지가 좀 더 보태준 거고.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다시 꺼내냐? 참, 너도 꽁한 게 있었는 모양이구나.”

아우를 상대하다가 졸지에 형과도 말씨름을 하게 된 경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평소에 의 좋던 아들들이 얼굴을 붉히며 서로를 비난하는 양을 보며 찬샘댁은 왈칵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뭔 소리들인지 알겄다. 겔국 요 남은 땅이 원수가 될라는 가부다. 느 삼형제만언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었는데. 자꾸 여러 말 하지 말어라. 나두 다 생각해논 게 있으니께, 그만덜 혀. 아부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헌테 한 말두 있구. 내가 나중에 혼자 밥두 못 끓이게 되믄, 그때 밥이래두 차려주는 자식헌테 쬐끔이라두 더 냄겨주라구 허셨다. 느덜이 땅 가지구 싸우믄, 난 그 꼴은 못 본다.”

더 얘기를 하려해도 목울대가 떨려서 이을 수가 없었다. 찬샘댁은 그대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추석 전날이라 마을회관에는 아무도 없을 터인데도 찬샘댁의 발길은 회관으로 향했다. 휘적휘적 내딛는 발걸음이 허공에 뜬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찬샘댁은 길가 풀섶에 앉아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이 에미 앞에서 그런 말들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감, 영감이 떠나고 나니께, 자식덜두 날 보기럴 아주 썩은 울바자 보듯 하는구려. 내 혼자 이 꼴을 보믄서 우째 살라고 휑허니 가버리셨소. 이 무정한 양반아.’

혹시라도 누가 볼까 주위를 살피면서도 찬샘댁은 한참이나 그렇게 혼자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영감이 늘상 풍기던 문뱃내조차 아련히 그리워졌다.

찬샘댁이 나가고 나서 잠시 말없이 앉아있던 삼형제는 찬샘댁의 기대와는 달리 다시 다툼을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건 경태였다.

“큰 형, 엄마 앞에서 유언장이니 뭐니 한 건 너무한 거 아녀요? 글고 어쨌든 형들은 서울에서 자리 잡았고 애들 공부도 거의 다 시켰잖아요.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되죠. 창피한 얘기지만 지금 내 형편이 말이 아니에요. 애들 학원도 다 끊었다니까. 한창 공부해야 될 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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