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의 맛

  • 입력 2013.11.15 15:32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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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당에 벗이 찾아 들었다. 한동안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벗이 한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백석의 맛’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백석시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분류하여 각 음식과 시의 조화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펴낸 책이다.

백석은 재북작가로 요즘 같으면 해금은 어림없는 일이겠으나 80년대 후반 창작과 비평에 소개된 이후 해금되어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의 연구서와 시전집 등 그의 시를 즐겨 찾는 이가 많아졌다.

백석이 시 중에 음식이름을 유난히 많이 쓴 것은 음식이 지방의 문화를 대변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석이 태어난 정주지방은 평안북도로 지방특유의 음식문화가 있었다. 그 음식들은 고스란히 시어로 들어와 감칠맛나는 시들을 만들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많고 우리가 들어 보지 못한 음식들도 많이 나온다. 막써레기, 제비꼬리, 반디젓, 송구떡, 무이징게국, 보탕, 오두미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이 음식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흰밥이 함께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의 시 함주시초-4 ‘선우사’를 본다.

…(초략) 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서로 좋구나... (중략)힌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흰밥은 쌀밥이다. 북에서는 이밥이라고도 한다. 백석은 이 시를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미화한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난 그 시대의 우리들이 욕심없이 세 때를 쌀밥으로 먹는다면, 그런 세상이라면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밥에 고깃국! 김일성이 북한 주민에게 늘 약속했다는 바로 그것이다. 아니 이밥에 고깃국이 인민들의 원이었던 시절에 그것이 희망의 절대치인 시절,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에 보이듯 온갖 음식 이름과 모여든 일가친척의 촌수를 호명하는 것만으로 정답고 흥성하고 풍요롭다 못해 감격적이었다. 흰 쌀밥을 고봉으로 올리고 가짓수도 많은 그 음식들을 대식구가 함께 먹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이제 50대 이상일 뿐이다.

농민들도 그것을 기억하는 50대 이상들만이 나락을 적재한다. 50대 이하는 바빠서 같이 하지 못한단다.

그들에게 그런 기억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오로지 규모를 확대하고 가공하고 판매해야하는 벅찬일들을 해 내어야만 한다. 밤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에 적재하고 거기 시간을 쪼개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락적재는 쌀값 몇푼을 올리고 내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농민이 쌀의 주인이라고 선언 하는 것이다. 쌀은 생명이고 민족의 문화정신이며 정서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온국민이 지켜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손잡고 해야 할 일이고 박수 받아야 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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