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34회

  • 입력 2013.11.10 13:0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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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가 농사를 짓겠다며 내려올 때 가지고 온 돈은 겨우 천만 원 남짓이었다. 거기에 귀농자금이니, 영농자금이니 해서 농협에서 얻은 게 삼천만 원이었고 다시 논을 담보로 이천을 빌린 것이었다.

그 중에는 서울에 두고 온 처자식에게 생활비 삼아 부친 돈도 있었지만 결국 이년 사이에 고스란히 하우스로 들어간 셈이었다.

날린 돈이 아니고 하우스라는 자본으로 남아서 계속 농사를 짓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쫀쫀히 따지고 보면 해마다 농사에서 돈이 나와야 자본이 되는 것이지, 적자가 지속된다면 허울 좋은 하우스 농사가 자칫 집안 말아먹을 애물단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가갸거겨를 깨우치지 못해 평생 제 이름자도 남의 손을 빌어서 쓴 찬샘댁이지만 손가락셈만으로도 빤한 일이었다.

요즘은 그래도 일년 중에 제일 값이 좋을 때라서 오이 한 박스에 오만 원이 넘게 나오지만, 한창 값이 좋았을 때 비하면 그도 한참 떨어진 가격이었다.

하루에 들어가는 기름만 해도 엄청난 모양이었다. 기름 값이 무서워서 기름보일러는 아예 세워두고 새로 놓은 연탄보일러에 하루 연탄 네 장으로 떨면서 겨울을 나는 판에, 그 넓은 하우스가 뜨끈하도록 보일러를 돌려대니 대체 이게 무슨 농산가 싶은 게 찬샘댁의 심정이었다.

게다가 하우스에서 몇 시간 일을 하고 나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워서 발이 허방을 딛는 것 같았다. 늙마에 죽을고에 들었나싶어 오밤중에 깨어나 문창이 밝아오도록 뒤척이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자칫하면 마지막 남은 땅까지 날아갈 수도 있다니,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아뜩해졌다.


“그러믄 어떡해야 좋겄냐?”

울상이 된 참샘댁이 묻는 말에는 대답이 없이 성미가 급한 경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형, 엄마하고 얘기해봤자 소용없고 경태랑 직접 얘길하자고. 뭐가 겁나서 말을 못해?”

“그러면 안 돼. 누가 뭐래도 땅은 어머니, 아버지가 평생 고생해서 장만한 거 아니냐. 어머니 뜻이 첫째다.”

형편이 어려워서 맏이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며 늘 미안해하는 경수의 말에 찬샘댁은 콧날이 다 시큰해졌다.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었다.

“그걸 누가 몰라?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어어, 하고 미루다가 잘못되면 그 때는 어떡할 거야? 그러니까 나랑 얘기했던 대로 밀고 나가자구.” 둘 사이에는 미리 무슨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둘이 뭔 상의럴 했어? 큰 애비가 어련히 생각했겄지만, 동기간에 의 상헐 일 있으믄 안 된다.”

찬샘댁이 왠지 불안해서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마침 나갔던 경태가 돌아와 그예 삼형제가 서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작년 추석 때였다.

“경태야, 솔직하게 말하자. 우리 삼형제가 여태까지 죽고 못 사는 형제간은 아니라도 서로 언성 높여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살았지 않냐? 그러니까 서운하게 듣지 말고 서로 의논한다 생각하고 들어봐라.”

경수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나오자 경태는 적이 놀란 모양이었다. “뭔 일이래요? 내가 큰 형한테 서운할 일이 뭐가 있어요?”

어리둥절한 경태를 두고 경수가 담배를 무는 사이에 경철이가 입을 열었다.

“너, 농사짓겠다고 내려와서 고생하는 건 나도 아는데, 땅 담보로 잡히고 돈을 썼다며? 그런 건 솔직히 우리한테 상의를 하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 말을 듣자 경태의 낯빛이 홱 바뀌었다. 금세 숯불이라도 끼얹은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여? 누가 들으면 몰래 땅이라도 팔아먹은 줄 알겠네. 잠깐 회전이 안 돼서 대출 좀 받은 걸 일일이 형들한테 얘기하고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야? 걱정 마. 이자 꼬박꼬박 내고 올해 안에 원금도 다 갚을 테니까. 참, 형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

경태가 식식거리며 제 형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곁에서 듣는 찬샘댁의 가슴만 두방망이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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