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농민의 날, 산내에서 가래떡을 나눈다

  • 입력 2013.11.10 12:59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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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북쪽 산내엔 넓은 논이 없다. 농촌이라기보다는 산촌에 더 가까운 마을이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집에서 먹고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보낼 만큼은 쌀농사가 된다.

최근엔 가까운 실상사에 귀농학교를 통해 귀농공부를 마친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그들이 농사지은 쌀은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 도시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넓은 들이 없으니 쌀의 산지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쌀맛까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처음엔 서툴게 농사짓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농사 노하우가 쌓여 밥맛의 풍미가 제법이다. 추수가 끝나면 쌀농사 없는 내게도 먹어보라 조금씩 나눠주는 것 얻어먹는 재미 또한 꽤 재미지다.

쌀은 봄부터 가을까지의 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성질(平性)과 함께 땅의 온전한 맛인 단맛(甘味)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쌀은 그 평화로운 성질과 단맛으로 비위를 튼튼히 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입이 마르는 증상, 구토와 설사, 병 후 허약함, 소화불량, 식욕부진, 영아가 젖을 토할 때 등의 다양한 증세에 여러 형태의 밥이나 죽으로 활용되어 왔다.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 조차도 몸의 열을 내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나는 증세에 효과가 있으니 참으로 이래저래 사람에게 유용한 작물이 아닐 수 없다.

주식이 쌀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을 위하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도 다른 무엇이 아닌 쌀로 만든 송편이나 가래떡으로 끓인 떡국을 밥 대신 상에 올린다.

송편과는 달리 ‘첨세병(添歲餠:나이를 더 먹는 떡)’으로 주로 해먹던 가래떡이 요즘은 떡볶이라는 이름의 음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빼빼로데이’라며 온갖 상술로 들썩거리는 11월 11일 농민의 날에 가래떡을 나누어 먹자는 캠페인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산내마을에서는 농민의 날을 기해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쌀로 빚는 술맛 자랑대회를 하는데 마을별로 각자 자기 마을에서 추수한 쌀로 빚은 술을 안주와 함께 가지고 나온다.

또 자신들이 농사지은 쌀로 가래떡을 뽑아 나누는 행사도 같이 한다. 몇 안 되는 마을의 귀한 아이들이 생각 없이 빼빼로니 어쩌니 하지 않고 부모님들이 농사지은 쌀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자는 것이다.

빵과 과자가 아이들 간식의 전부인 세상에서 우리 쌀로 만든 간식을 개발해 많이 먹이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 건강도 지키고 농민의 시름을 더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떡꼬치용 소스가 병에 담겨 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습관적으로 뒤에 붙은 라벨을 읽자니 작은 글씨의 첨가물들이 많기도 많을 뿐 더러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들어갔음에도 옆에 보면 향미증진제로 바이오발효핵산-IG가 또 있고, 올레오레진파프리카니 크로브분말이니 각종 분말에 합성보존료까지 모두 서른 가지가 넘는 첨가물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기도를 한다. “동네 골목마다 빵집마다 더 많은 떡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농민의 날에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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