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과 밀양, 한국 농촌의 미래

  • 입력 2013.11.08 14:28
  • 기자명 허남혁 (전)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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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혁 (전)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장면 하나. 우정사업본부가 전국의 면 단위 우체국들을 통폐합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인력에 비해 일거리가 없는 우체국들을 계속 두기에는 적자가 계속 커져서 어렵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우려의 목소리를 보이는 댓글을 달았다. 적자의 구실을 엉뚱한데서 찾는다는 비판도 있고, 농촌지역의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제 택배 하나 보내는 일도 농촌에서는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시에서는 너무 많아서 이젠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은 병원들이 농촌에서는 눈씻고 하나 찾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산부인과나 치과 하나 없는 농촌지역이 훨씬 더 많다. 농촌학교의 통폐합 추세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인구가 적어서 수요가 적은 농촌에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벌어지고 있다.

장면 둘. 요즘 충남의 농촌 지역을 다니다 보면 산업폐기물처리장 입지를 결사반대하는 농촌주민들의 깃발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 올 초까진 부여에서 그랬고, 최근에는 예산 대술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농민들의 입장은 간단했다. 제발 농사나 짓고 살 수 있도록 가만 내버려두라는 것. 그리고 청정지역에 폐기물처리장이 웬말이냐는 것이다. 특히 예산 대술면의 경우에는 인근에 황새마을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사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사례나 심심찮게 들려오는 골프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 사례들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밀양이든 골프장이든 산업폐기물처리장이든 농민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농사나 짓고 살게 가만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선 정부나 지자체가 친환경농업을 장려하고 농촌의 어메니티를 부르짖는 판에, 다른 한쪽에선 그러한 노력들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선 토지에 대한 보상금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농민들의 손에 쥐어진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대에 농촌의 역할은 사실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국가에서도 농촌주민이나 농민의 숫자가 줄어들길 바랬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져서, 농촌은 식량생산의 공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과밀한 도시인구의 분산을 통한 도농간 균형발전이나, 자연환경과 경관을 유지하면서 발생되는 다양한 공익적 혜택들을 기대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 선진국들은 농업과 농촌의 이같은 다원적 기능과 공익 효과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국가정책과 농정을 변모시키고 있고,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그러한 추세로 농정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더군다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전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폭등하면서 점차 농업과 농지의 가치도 사회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농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국가정책이 일관되지 못한 것 같다. 과연 도시민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더 많이 이주해서 농촌에 사람이 더 많이 살고 농업에 종사하길 바라는건지 아닌지 그 태도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농식품부 수준을 넘어 국가의 입장이 명확해지고, 그것이 법과 제도로 확립되고, 사회적인 인식과 시선도 그에 맞춰 바뀌어야만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에 친환경농업이든 6차산업화든 로컬푸드든 새로운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한국의 모든 농촌지역들은 밀양처럼 언제든 국가가 원하면 쫓겨나가야할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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