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가격 폭락에 계약재배까지 등 돌려… 두 번 우는 농민

계약재배한 배추 수매 두고 농민 - 농협 간 갈등 일어

  • 입력 2013.11.08 14:19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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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당진 고대면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서흥석씨가 출하되지 못한 배추로 가득찬 밭을 보여주며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함께해요 김장채소 소비촉진운동’

가을배추 주산지인 충남 당진 고대면에 도착하자마자 김장채소 소비를 독려하는 당진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한창 배추 수확이 이뤄지고 있어야 할 당진의 배추밭에는 아직 배추가 한 가득이었다. 배추 농가들이 농협과 맺은 계약재배 물량이 농협 쪽의 거부로 수확되지 않고 있는 것이 주 이유다.

농민 “가격 떨어지니까 상품성 핑계로 수매 안하려고 해”

충남 당진 고대면에서 5,289㎡의 밭에 배추농사를 짓는 서흥석(69)씨는 지난 7월 농협과 배추 약 1만2,000포기를 계약재배하기로 했다. 이후 배추 가격이 폭락하면서 중간상인들의 발걸음이 거의 끊기다시피 해 판로처가 막히다보니, 배추 농가는 농협과의 계약재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서씨는 “지난해는 계약재배 가격보다 시장가격이 높았지만 올해는 계약재배의 경우 50cm그물망 당 1,500원으로 시장가격보다 그나마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막상 수확기가 되자 농협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배추 수매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약 이후 농협중앙회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나와 재배 현황을 확인하고 갈 때는 상품성에 대해 별 말이 없다가 수확기가 되자 배추를 수매할 수 없다고 거부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진 지역에 충이 심하긴 했지만 상품성이 아주 떨어져 못 가져갈 정도는 아니다”라며 “배추 가격이 폭락하니까 농협중앙회가 상품성을 핑계로 계약재배물량 수매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씨가 농협과 계약한 물량은 3톤 트럭으로 5대지만 아직 한 대의 물량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상품성이 안 좋아 다 가져가지 못한다고 쳐도 계약을 했으면 트럭 반대가 됐어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답답해했다.

이어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초기에 팔아버리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농협 쪽에서 수매를 거부하니 다른 곳에 배추를 팔아야 하는데, 지금은 이미 가격이 떨어 질대로 떨어진 상태라는 것. 그는 농협이 물건을 받아주지 않으면 결국 배추를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배추가 오래 저장되는 작물도 아닐뿐더러 밭을 정리해야 다음 작물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씨는 상품성이 있는 배추만이라도 가져가 달라고 요청했지만 작업반은 작업비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상품성 있는 배추만 골라 작업을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씨는 “농협을 믿고 계약재배를 했는데 요즘은 농민 잡아먹는 게 농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진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장매영(62)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장씨는 농협과 3톤 트럭 3대를 계약했는데, 2대까지 나간 이후 나머지 한대는 가져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농협이 제시한 지침대로 약을 치고 비닐을 깔고 포기간 거리도 맞춰 심었다”며 “지난해는 이 정도 상품성의 배추도 모두 가져갔다. 이제 와서 농협에서 계약 파기를 해버리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농협 “상품성만 좋으면 적자 나더라도 수매 할 것”

고대농협이 고대면 농민들과 맺은 계약재배 면적은 3만4,710㎡ 이지만, 지난 4일까지 수확된 면적은 4,958㎡에 그치고 있다.

김상태 고대농협 경제사업소 과장은 “웬만해선 다 출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뿌리혹병과 진딧물 등으로 상품성이 좋지 않다”며 “농협중앙회에 물건을 받아달라고 계속 부탁하고 있지만 중앙회에서는 배추가 도저히 시장에 팔 수 없는 상태라고 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이수희 농협중앙회 산지유통부 채소사업소장은 “7월에 당진 농민 분들과 계약재배를 맺고 이후 정기적으로 검사를 나가면서 상품성에 대해 계속 조언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추석 이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다. 때문에 병해충에 더 신경을 써야하고 상품성이 떨어질 경우 수매하지 못한다고 사전에 언급을 했는데 농민 분들이 이를 충실히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상품성만 좋으면 현재 배추 가격과 상관없이 적자를 보더라도 수매할 것이다”라며 “올해 여름부터 배추의 상품성에 따라 계약금을 차등 지급하게 됐는데, 이는 농가와 지역농협에 미리 알려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농가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를 다 받아주면 농협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계약재배 제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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