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33회

  • 입력 2013.11.02 12:2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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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기름 때가며 지은 오이 농사도 생각과는 달랐다. 그것도 운수소관이라고 해야 할 지, 몇 년 동안 좋았던 값이 경태가 첫 수확을 시작한 때부터 가격이 곤두박질 쳐서 첫 해에만 이천 만 원이 넘게 적자가 나고 말았다.

그 적자를 조금이나마 메워준 게 찬샘댁이 혼자 짓다시피 한 논농사였고 더불어 찬샘댁의 한숨소리도 깊어만 갔다.

속상한 걸로 치면 경태가 내려온 뒤로 형제간에 서로 의가 틀어진 것이 더했다. 위로 두 형은 경태만큼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어도 서울에서 시작한 직장 생활을 그럭저럭 이어가며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집을 살 때 논 몇 마지기를 팔아 보태준 것 말고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살림을 해나갔다.

명절이면 자가용에 손주들 태우고 삼형제가 줄줄이 들어서는 걸 보는 게 찬샘댁의 자랑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바였다.

그런데 경태가 내려온 후로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경태가 찬샘댁 앞으로 되어있는 땅에서 하우스를 하다가 결국 제가 차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것이었다.

“어머니, 경태가 다른 말은 안 해요?”

작년 추석에 내려온 큰 아들 경수가 앞뒤 없이 뭔 소린지 모를 말을 했을 때도 찬샘댁은 아무런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그 눔이 뭔 말을 허냐. 해보지두 않은 농사 허느라고 날마두 허리야, 어깨야, 하고 앓는 소리나 헌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거시기하지만서두요, 경태가 농사지으면서 뭐, 땅을 제 명의로 하자거나 그런 말이 없었냐고요?”

“그런 말은 없었는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때 아부지 돌아가시구 나서 아주 늬들 앞으루 해놨으믄 여간 좋아? 원래 아부지가 그리 허라구 했던 건데.”

“그게요, 상속으로 하려면 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다 서울에 살기 땜에 부재지주가 되고, 그러면 복잡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래서 그랬지요. 그냥 어머니가 상속을 받는 걸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 같아서 그리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주 매듭을 짓는 게 나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경수가 담배 하나를 빼물며 뭔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눈치였다. 제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는 찬샘댁 앞에서도 얼굴을 피해가며 물던 담배를 이제는 대놓고 피우고 있었다.

“남덜 다 끊넌 담배를 뭣허러 자꾸만 핀다니? 기침두 자꾸 해대면서.”

경수가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기도 전에 둘째 경철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형, 톡 까놓고 얘기 해. 엄마한테 빙빙 돌릴 게 뭐가 있어?”

뜻밖의 소리에 찬샘댁의 가슴이 철렁했다. 하루아침에 경태가 농사를 짓겠다며 내려왔을 때처럼 큰 아들에게도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던 것이다.

“뭔 일이 있다냐? 애비두 직장이 잘못된 거여?”

“아니에요. 딴 게 아니고요, 경철이하고 얘기를 좀 해봤는데, 경태가 내려와서 농사를 짓잖아요? 그러니까 갸는 인제 제 앞으로 땅을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없단 말씀이죠. 우리도 경태가 그럴 리는 없다구 생각하지만, 사실 경태 댁이 욕심이 좀 많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형제간에 재산 놓고 큰 소리 나오면 좋을 게 없으니까, 혹시라도 경태가 땅을 어떻게 해달라고 하면 절대로 그냥 해주지 말고 저희한테 연락을 하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경수에게 듣자 찬샘댁은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 형 얘기 허투루 듣지 말아요. 내가 들은 얘기가 있어서 그래.”

“무슨 얘기를 들었다는 거여? 경태는 나헌테 그런 말을 비친 적두 없넌디”

“엄마, 경태가 논 담보로 넣고 농협에서 돈 갖다 썼잖아, 그죠? 오이 농사해서는 적자만 봤다면서요? 그거 잘못하면 논 다 날라갈 수도 있다고.”

“많이는 안 썼어. 이천 만 원인가 냈다구 허든데 그걸루 설마 논이 날러가겄냐? 여기 땅금이 있넌디.”

“그게 그렇지가 않다니까요. 농사루 빚 갚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빚이라는 게 이자에 이자를 치는 놈이라 순식간에 늘어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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