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목의 논리

  • 입력 2013.11.02 12:12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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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이삭줍기라는 그림이 있다. 넓은 들에 아낙들이 허리를 굽힌 채 이삭을 줍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볼 때마다 가슴 밑이 서늘하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농촌풍경을 그린 것이라 말들 하지만 자세히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멀리 높다랗게 쌓인 노적가리와 앞의 한줌의 이삭을 줍는 사람을 대비했다. 부와 가난의 대비다. 게다가 멀리 작게 말을 타고 감시하는 지주가 손에 채찍을 들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대비다. 이삭을 줍는 사람들의 남루함과 지친 듯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라고 가르친건 엄청난 저의가 숨어있다.

이 그림을 보면 머리에 흰수건을 쓰고 벼이삭을 줍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가슴이 스산해진다.

가을이면 밀레의 이삭줍기처럼 이삭을 주웠다. 이삭(穗)이라는 말은 벼, 보리 따위의 곡식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부분을 말한다. 쉽게 벼 모가지다. 이삭줍기라 하면 떨어진 벼나 보리의 모가지를 줍는 일인데 이것이 전체적으로 과일이나 채소 등 농작물을 수확하고 흘린 것을 줍는 일로 통칭하고 있다.

충청도지방에서는 이삭줍기를 뒷목이라고 한다. 타작하면서 빠진 것을 뒤에서 줍기에 그런 말이 생겼을 법하다. 그런데 뒷목은 내 몫도 네 몫도 아닌 제삼의 몫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추수하면서 빠진 것들은 자연의 몫이다. 새나 들쥐나 벌레들이 먹어야 할 몫이란 말이다. 거기에는 배고픈, 가난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뒷목이 없으면 우리형제들의 어린 시절은 몹시도 궁핍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으로 뒷목으로 챙기는 몫이 만만치 않았기에 거두어들인 것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뒷목을 하지 않는다. 뒷목을 하는 품삯이 뒷목으로 거둔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제삼의 배고픈 자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싸가지가 된 것이다. 싸가지도 이삭이 변한 말이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이삭이 옳게 될 성 싶지 않다는 말이다.

국회가 쌀목표가격 인상에 별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애초 싸가지가 없는 일로 보였다. 쌀 목표가격을 올려주어야 할 정치적 명분을 옳게 만들어 내지 못하기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정부의 논리를 반박하고 쌀을 지켜야한다는 강한 논리를 내놓아야 하는데, 야당은 제 목소리 없이 정부의 논리 안에서 쌀목표값 인상을 논하자니 앞뒤가 맞지 않아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뒷목을 하지 않는 벌판의 논리는 정부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철저하게 자본과 경쟁논리에 의해 하늘의 논리를 버린 것이다.

하늘이 내린 것을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네가 먹고 또 다른 하나는 가난한 이웃이 먹지 않더라도 새가 먹고 쥐가 먹어야 한다. 뒷목의 논리는 농사가 지속적으로 계속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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