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금국(金菊)으로 지은 밥, 금반

  • 입력 2013.10.25 15:03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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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막 지났다. 된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니 땅위의 만물이 그 힘을 잃고 아래로 기운을 내리고 있는 계절이지만 오직 하나 국화만은 푸른 잎에 노란 꽃을 달고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꼭 이맘때였다. 여러 해 전 안동에 작은 토굴(그곳이 봉정사였지만)을 꾸리는 동수스님을 만나러 다녀온 적이 있었다. 차를 타고 멀리서 바라본 그곳은 마치 산기슭에 샛노란 유화물감이라도 풀어놓은 것 같은 진기한 풍경을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국화꽃 무더기들이 벌이는 향연이었다.

그것이 금국(金菊)이라는 국화꽃임을 확인하기 전에는 단풍든 차나무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 모습이 보성의 한 차밭을 보았을 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반해 넋을 잃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가을 이후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산골에 산국이 피기 시작하면 언제나 나는 안동의 봉정사에서 보고 온 국화밭을 떠올리곤 한다.

봉정사에서 만난 동수스님은 국화차를 내주시면서 그 이름이 ‘가을신선’이라 하셨다. 스님은 포부도 대단하셨는데 작고 귀엽지만 황후화로 불려도 좋을만한 그 금국으로 안동시가 하동이나 보성 같은 국화차 특화지역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하셨었다.

한방에서 국화는 쓰고 단 맛이 있으며 약간 찬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혈압과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으며 눈을 밝게 하고 두통에 도움이 되는 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폐와 간을 이롭게 하는 꽃으로 꽃이 피었을 때 따서는 그늘에서 말려 쓰면 좋다.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고 한다. 위장을 평안케 하고 오장을 도우며 사지를 고르게 한다. 그 밖에도 감기, 두통, 현기증에 유효하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한로와 상강을 즈음한 시기에는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주를 담는 풍속이 있었는데 <조선요리제법>에는 가을에 감국의 잎을 따서 맑게 씻어 찹쌀가루를 묻혀 끓는 기름에 띄워 지져서 계핏가루를 치고 놓는다고 친절하게 조리법도 기록되어 있다. 바깥 기온이 차지니 성질이 따뜻하고 찰진 찹쌀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일 게다.

오늘은 마당의 국화꽃을 몇 송이 땄다. 감초 한 조각과 국화꽃 몇 송이를 물에 넣고 끓인다. 그리고 안동의 농부에게서 받은 마를 한 뿌리 씻어 큐브 모양으로 썬다. 밤도 몇 개 까서 반으로 잘라 놓고 멥쌀과 찹쌀을 적절한 비율로 섞고 국화 우린 물로 밥물을 잡아 밥을 한다. 국화꽃의 황금빛이 흰 쌀알에 아주 살짝 어리고 노란 밤알들이 섞인 밥이 구미를 당기게 한다.

생국화의 선명한 노란색이 주는 신선한 즐거움, 차로 만들어 우렸을 때 기품 있게 퍼지는 은은한 향기, 국화전이 혀끝에서 노는 느긋한 행복, 그리고 꽃밥(금반)으로의 마무리. 이 가을에 이보다 더한 호사가 또 있을라구.

꽃밥을 먹고 상을 물리고 다시 국화차 한 잔 우린다. 차의 맛은 텅 빈 골짜기처럼 그렇게 고요하다. 이 순간에는 수용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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