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기름에 밥 비비는 행복을 위해

  • 입력 2013.10.25 13:5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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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 때 자주 듣게되는 말이 “깨가 쏟아지는구나”하는 부러움과 빈정거림이 섞인 인사말이다. 둘 사이가 너무 좋아 까르르대는 모습과 소리가 깨를 털 때 깨 떨어지는 소리 같아서 일거다. 게다가 깨가 얼마나 고소한가. 신혼도 먹을 것이 없어도 고소한 것이다.

들깨 두어 마지기를 두들긴다. 좁은 공간에서 도리깨질을 하니 깨가 사방으로 튄다. 아내는 연신 눈을 흘기며 깨가 달아난다고 성화지만 도리깨질이 서툴러서인지 자꾸만 깨는 밭으로 돌아가려 한다.

도리깨도 내가 만들어 쓰지 못하는 세상이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힘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어깨가 부러질 듯 한 고통으로 잠시 담배 한 대를 빼어 문다. 문득 김준태의 참깨를 털며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토닥토닥 두들기는데 젊은 청춘인 손자는 집에 빨리 가려는 욕심으로 제 힘껏 내리친다. 내리칠 때마다 쏟아지는 깨알들을 보며 신이나서 더 힘껏 두드린다. 할머니께서 결국 한마디 하신다. “아가 모가지까지 떨어지면 안되느니라.”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와 방법이 있다. 우격다짐으로 해선 결코 일을 이룰 수가 없다. 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뒤탈이 있거나 하나마나한 일이 되고 만다.

산업사회의 자본은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쌍용차로 대변되는 산업사회의 불행은 우격다짐으로 비롯됐다. 아마 김준태시인은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였을 게다.

최근 우리 주변에 우격다짐이 많이 보인다. 특히 권력을 만들고, 지키고, 확장하기위한 우격다짐이 어느 때 보다 일상화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권력기관들에서 날아오는 여러 소식들이 밖으로 튀어 나가는 깨알처럼 미덥지 않다. 국정원에서 군대에서 보훈처에서 검찰에서 경찰에까지. 순리대로 토닥이며 털어도 순순히 내어줄 것은 내어줄 것인데 우격다짐이니 산지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것 같다. 어지러운 세상에 들깨를 털며 더욱 어지러움증을 느낀다.

농사라는 것이 본래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지금은 하늘의 이치를 무시하거나 거스르는 농사도 있긴 하나 그건 농사가 아니다. 이미 땅을 떠나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농사가 농사일 수 없다.

농사가 순환의 한 과정이지 못하고 별나라나 달나라에서 뚝떨어져 내린것이라면 이미 내 몸 안에서도 뚝 떨어져 내리는 참깨 모가지가 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 농업이라고 우격다짐을 한다. 기필코 천리를 역하는 농사는 있을 수 없음을 오늘 깨를 털며 생각하는 것이다.

농사뿐이랴 사람이 사는 이치도 땅과 하늘이 없으면 농사와 마찬가지가 된다.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고 꽃이 피면 물주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순리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명심보감이 이르는 순천자는 흥이요 역천자는 망(順天者之興,逆天者之亡)이라 함이 바로 그런 것이다.

오늘도 순리를 거역하는 행위들이 라디오 뉴스를 통해 흘러나온다. 모가지까지 떨어지면 안되는 이치를 청와대가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고소한 들기름에 밥 비벼 먹는 작은 행복을 안겨줄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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