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개방, 현상유지는?

  • 입력 2013.10.19 12:57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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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2015년 이후 쌀시장개방 문제와 관련해 현상유지(standing still)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정부의 선택지에 현상유지는 들어있지 않았다.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는 방안과 현재와 같은 부분 개방을 유지하되 추가로 의무수입 물량을 늘리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정부는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부분 개방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의무수입 물량을 추가로 더 늘리지 않아도 되는 현상유지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현상유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세 가지 선택지를 서로 비교해 보면 현상유지가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은 지난 14일 농식품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농식품부 장관도 답변을 통해 현상유지가 한국에 가장 유리한 방안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국정감사를 통해 현상유지가 가장 좋은 선택지라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이 부분은 국회나 정부 모두 인정한 것이다.

다만 정부측 관계자들은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가장 좋은 방안이기는 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결국 관세화로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현상유지의 가능성 여부에 대해 정부측과 일부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들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은 매우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2015년 이후에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쌀시장의 개방상태를 현재와 같은 수준에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현상유지의 가능성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WTO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소모적인 논쟁이나 극단적인 대립을 피할 수 있다.

오히려 WTO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정부와 농민단체가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최악의 경우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는 WTO의 결정이 나오더라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별로 잃을게 없다.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나라라는 점을 부각시켜 향후 다른 통상협상에서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소위 ‘봉’으로 여기지 않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정부가 쌀농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러한 노력 자체가 필요없다고 단정하고, 현상유지에 대한 WTO의 결정을 구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현상유지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현상유지에 가려 이번 국정감사에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쌀시장의 관세화 전환이 미국, 중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될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밥쌀용 쌀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FTA를 통해 이 나라들에게 더 낮은 우대관세의 혜택을 부여할 경우 정부가 말하는 고율의 관세는 빈껍데기만 남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정부측 관계자들은 WTO와 FTA는 별개의 협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형식적으로 다른 협상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쌀시장의 관세화 전환과 한미FTA 및 한중FTA가 연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한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순진한 국민이나 농민들은 더 이상 없다.

심지어 정부 관계자들도 FTA와의 연계 위험성을 누구도 자신있게 부인하지는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을 서로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 그리고 농민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시장 개방은 막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쌀시장의 전면 개방 대신 부분 개방이라는 작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정도의 의지를 보여줘도 농민들이 정부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인데,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한 정부의 말과 행동을 보면 농민들로부터 신뢰받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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