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어머니들과 나누고 싶은 중양절 밤떡

  • 입력 2013.10.12 10:46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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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홀수가 겹치는 날은 이름을 붙여 특별한 행사를 하거나 의미를 더하는 음식을 해 먹으면서 고단한 삶에서 활력을 찾으려 노력했다.

일 년 중 마지막으로 홀수가 겹치는 음력 9월 9일(올해는 10월 13일)은 중양절(重陽節)이라 불린다. 重陽節이란 한자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이 날은 양(陽)의 기운을 가지는 홀수가 겹치는 날이다.

중양절에 조상들은 높은 곳에 올라 단풍 구경을 하면서 시와 음식을 함께 나누는 중양놀이를 하였는데 재액을 피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하나의 풍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열양세시기>에도 ‘단풍이 들고 국화가 만발할 때 사람들이 놀고 즐기는 것이 봄에 꽃과 버들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양절에 중양놀이를 산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대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국화주를 마시고 밤떡을 해먹기도 하였다. 찹쌀가루에 삶아 으깬 밤을 넣어 버무린 후 잣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 밤가루설기떡이었는데 이 떡을 특별히 ‘율고’라 부르기도 했다.

찹쌀설기를 찌기 어려우니 더러 멥쌀을 이용해 밤떡을 해먹기도 하였는데 부드럽고 달콤하므로 서양식 케이크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는 오히려 멥쌀을 이용한 밤떡이 더 사랑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밤은 곡식에 비견될 만큼 탄수화물이 많고 비타민C나 칼슘, 철분, 베타카로틴 등의 영양소가 골고루 많이 들어 있어 특히 성장기의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아주 좋은 식품이다.

한방에서는 신장에 좋은 과일이라 하는데 맛이 짜고 성질이 따뜻하며 그 기운이 신장으로 들어가 신장을 튼튼히 하기 때문이다.

소화기가 허약해 음식을 먹으면 배가 꾸룩거린다거나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에게 밤은 훌륭하다. 신장의 기운이 허약해서 오는 허리나 다리의 통증 등에도 밤은 좋은데 반그늘에서 바람으로 말린 밤을 구워서 먹으면 그 효과가 배가 된다고 한다.

밤은 익어서 적당한 때가 되면 밤송이를 터뜨리고 스스로 세상으로 나온다. 그래서 사상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밤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기운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고 있으므로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이 밤을 많이 먹으면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밤은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가 보면 밤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고개 등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 어느 곳의 밤이든 모두 맛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공주에서 생산되는 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1611년 허균이 전라도의 함열로 귀양 가서 쓴 ‘성소부부고’ 속 도문대작(屠門大嚼)편에 보면 좀 다르다. ‘상주(尙州)에서 나는 밤은 작은데 껍질이 저절로 벗겨져 속칭 겉밤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밀양(密陽)에서 나는 밤이 크고 맛이 가장 좋고, 지리산에서도 주먹만 한 큰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벼 나락이 곳간에 쌓이고 밤이 지천인 계절이니 마음을 내서 밤 넉넉히 삶아 넣고 율고 찌고 국화주 없다면 국화차라도 한 잔 마련하여 이웃을 청하면 좋겠다. 하지만 연일 들리는 밤의 고장 밀양의 소식에 단 한 차례도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마음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 까닭에 이번 중양절엔 꼭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서 율고 넉넉히 장만하고 따뜻한 국화차 마련하여 밀양으로 가고 싶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율고가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기를, 맑은 국화차 한 잔이 혼탁한 누군가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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