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병 환자를 위한 변론

  • 입력 2013.09.29 01:07
  • 기자명 서정욱 안성농민한의원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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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습관병이라 불리우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은 그자체로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쉽게 치료되지 않고, 오랫동안 앓게 되면 여러가지 합병증들을 일으키게 된다. 어려운말로는 비감염성 만성퇴행성질환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성인병이라 부르던 것들이다.

성인병이라고 부를 때에는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생기는 질병’으로 받아들여져 환자들은 더 수용적이 되지만, 치료는 간과되기 쉬웠다. 어차피 나이들면 생기는 질병, 다시 젊어질 수도 없는 것을 치료해서 무엇하랴...

 요즘에는 발병 나이가 점점 어려져 아동에게도 소아당뇨, 고혈압 등이 나타나면서 ‘성인병’ 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어서 ‘생활습관병’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의미로 식사, 운동, 휴식, 흡연, 음주 등의 생활습관이 질병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병이다. 한마디로 lifestyle ‘related’ diseases이다.

하지만 생활습관병의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생활습관 전반의 문제. 즉 환자의 일상생활 하루종일의 문제로 인한 병이고, 환자의 일상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이곤 한다. lifestyle diseases 가 되어버린다. “거봐, 그러게 내가 뭐랬냐. 술 담배 좀 작작하고 운동 좀 하라고 하지 않았냐. 앞으로는 술 담배는 물론 TV 좀 그만보고 게임도 그만하고 건강식 위주로 식사하면서 군것질 끊고… 내 말 좀 잘 듣고… ” 환자는 병에 걸렸단 이유만으로 그의 생활 전체가 도마위에 올라, 철저히 해부 당하고 개조의 대상이 돼버린다.

타고난 유전적 요인이나 순간의 실수가 발병 동기가 아니라 ‘습관’이 원인이 되어버리고, 치료에서도 의학적 기술이나 사회적 도움보다는 ‘습관 개조’가 문제가 되어버리면서, 환자는 죄인이 되고 갱생이 치료가 된다.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해 주어야 할 가족조차도 교도관이 되어 감시하고 통제하며, 의사는 판사가 되어 환자에게 선고를 내린다. “피고에게 평생동안의 식이요법과 금욕생활을 선고하노라 땅땅땅.” 병원이 법원이며, 집안이 감옥이다.

사실은 얼마전까지 성인병이라 불리던 생활습관병이 독일에서는 ‘문명병’, 스웨덴에서는 ‘유복병’이라고 불리우고, 혹자는 그런 생활습관을 야기하는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병’이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지나치게 ‘환자의 습관’에 주목하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질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환자를 죄인 취급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신질환자는 악마로 취급되었고, 콜레라는 더러움에 대한 저주였으며, 페스트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었다. 가깝게 에이즈 환자는 성적인 타락의 죄인이었다.

 생활습관병을 이겨내기 위한 작은 시작은, 생활습관병에서 생활습관은 ‘영향(related)’을 미치는 한 요인일 뿐이며. 환자는 생활전반의 문제를 가진 고집불통의 죄인이 아니라 격려받고 지지 받고 보살핌을 받아야할 가족이라는 생각에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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