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마을 28회

  • 입력 2013.09.27 18:3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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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봐도 잘 모르겠으니까, 자네가 설명을 좀 해봐.”

준석은 경태가 보여준 손익계산서 페이지를 눈으로 당기며 손등으로 눈가를 비볐다. 부쩍 눈이 나빠져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다.

“우선,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손익계산서라는 게 한 마디로 전체 수입 내역과 지출 내역을 보여주고 손해가 났는지 이익이 났는지를 보여주는 거란 말이지요. 보면, 산동면 농협이 작년에 총 백오십 억 정도 수익이 나고 비용은 백삼십 억이 좀 넘지요. 그러니까 한 이십 억 정도가 이익이 났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이익 중에 십오억이 한 군데, 그러니까 대출금 이자에서 나왔어요. 예치금 이자 오억까지 보태면 이자 수익만 이십억인데요, 물론 그 중에 예수금 이자로 십억이 나갔으니까, 절반 정도가 순수익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경태가 술 대신 물을 한 컵 들이켰다. 말투가 어째 자신에게 따지는 것만 같아 준석은 조금 뜨악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쬐그만 농협에서 뭔 백억 단위로 논다냐? 거기 나온 게 다 믿을만 한 거여?” 옆에서 연신 하품을 하던 병균이 한 마디 거들었다.

“그것은 경제 사업으로 비료, 농약, 자재 이런 거 판매에다 주유소에서 기름 판 거, 하나로 마트 매출, 농산물 판매 같은 게 다 합쳐져서 액수가 커진 것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순수익은 사실 전체 이익에 반도 안 돼. 실제적으로 수익이 나는 데는 신용사업이여.”

“어디서 수입이 나오는지는 모르겄지만, 조합장 말이 해마다 사업이 잘 돼서 올해 배당금두 많이 준다고 허더만. 나야 출자해논 게 겨우 백만 원 정도라 받아봐야 몇푼 되지도 않지만.”

“그 얘기도 좀 있다 할 거여. 그러니까, 대출금 이자 십오억은 결국 우리 농민들이 가져다 바친 거잖아요? 말이 십오억이지, 우리 면 같이 삼천 명도 안 되는 조그만 동네에서 이건 일년 농사지어서 다 이자로 나간 꼴이지 뭐예요? 사실 농협이 농민들 피를 짠다는 말을 듣긴 들었어도 설마 그러랴 했는데, 이걸 보니까 그 말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경태의 그 말에는 준석이 덧붙일 말이 있었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어. 대출금 이자가 그렇게나 많다는 건 나두 놀랬지만, 그 대출이라는 게 도시에서 사는 자식덜이 부모 땅 잽혀서 돈 빌린 것두 많어. 우리 동네만 해두 여러 집이지. 뭐, 그랬다가 어려워져서 부모가 이자를 내는 경우도 있겄지만, 자식들이 이자를 낼 테니까, 꼭 농사지은 돈이 이자루 들어가는 것은 아닐 거여.”

그런 경우는 숱했다. 들어보면 별별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도시에서 경제적으로 파산한 자식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시골의 부모요, 알량한 땅뙈기였다. 땅을 잡히자, 안 된다 하며 부모 자식이 실랑이를 하다가 자식이 농약병을 들고 설치는 꼴 정도는 그리 드문 얘기도 아니었다. 자식이 부모 몰래 대출을 받았다가 결국 땅이 경매로 넘어가 늘그막에 알거지가 되어 고향을 떠난 경우도 몇 건이나 있었다.

이삼년 전쯤에 준석은 직접 그런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사과농사를 짓던 이웃 마을의 노인이 농협에 와서 고함을 치며 따지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었다.

“우째 이럴 수가 있는겨? 펭생 여긔서 농사짓구, 조합원으루 산 사람헌테 요렇게 땅을 싹 뺏어가는 기 사람이 할 짓이여? 조합장, 자네 말 좀 혀봐. 딴 데두 아니구 농협에다가 빚진 거였는데, 농협에서 나헌테 이럴 수는 없는 거잖여?”

노인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비료를 사러 갔다가 그 광경을 본 준석 역시, 농협에서 대출 받은 빚 때문에 땅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살벌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어르신, 참 저도 괴로운데요. 그게 우리 농협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법이 그렇게 하는 거라서요, 저도 힘이 없습니다.” 노인 앞에서 조합장 이상태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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