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점화효과

  • 입력 2013.09.27 18:17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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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쌀 재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해마다 2만 톤씩의 의무수입(MMA)쌀을 추가 수입하기로 결정하고 쌀 개방여부를 10년 뒤로 미뤘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가까이오자 이젠 자동관세화라고 농민들에게 말했다.

“논의할 것도 없이 협정문에 10년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도 그렇게 되나요” 하고 농민들이 물으면 예의 자동관세화론을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관계자들이 떠벌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점화효과를 노린 것이다.

물론 지금은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관세화 개방이냐 아니면 의무수입물량을 확대하며 유예를 할 것이냐 두 가지의 안 만을 제시하고 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들여오는 의무수입물량만도 처리가 곤란하니 완전개방으로 가야한다고 대중매체에 흘리는 것이다. 바로 점화효과다. 이제 농민들은 선제적으로 관세화개방이라는 말로 머리가 세뇌될 것이고 정부는 쉽게 완전개방으로 가닥을 잡아 처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점화 효과(Priming effect)는 특정한 정서와 관련된 정보들이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한 가지 정보가 자극을 받으면 관련된 기억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으로서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촉진현상을 나타내는 인지심리학 용어다.

독일심리학자 마니엘튀시의 실험으로 증명된 효과로 쉽게 말해 미리품은 감정이나 느낌이 다음 일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이다. 이것은 다중의 행동에 따라하는 동조현상과 유사한 개념으로 남들 분위기 따라 덩달아 자신의 분위기도 맞추어 가게 되는 심리현상이다.

그러니까 정부는 미리 관세화개방이라는 정책을 미리 대중매체를 통해 유포하고 나중 결정적 시기에 쌀 완전개방을 추진할 것이다. 이미 국민이나 농민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관세화 개방이란 말을 들었으므로 큰 충격도 감흥도 없으니 정부로선 엄청난 효과를 누린 것이나 진배없다.

농민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정부의 세세한 설명도 없었고 개방이라는 말도 이미 몇 십 년 전에 나왔던 말인지라 점화효과 때문에 뜨듯 미지근하다.

그렇다고 쌀 개방문제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다. 당장에 곶감을 빼먹기는 쉽다. 그러나 금방 바닥이 나고 나면 어디서 그 달콤한 곶감을 구할 것인가. 일부 학자들과 농민들의 주장대로 현상유지가 가능 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모든 국가들이 Standing still(현상유지)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터에 우리만 개방의 문을 활짝 스스로 열어줄 필요가 있는가.

현상유지정책에 대해서도 점화효과가 오도록 준비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멀리 내다보고 농업의 숨통을 지켜내자고 나락모가지에 약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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