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익혀 먹는 돼지고기 남원의 버크셔 K

  • 입력 2013.09.06 14:08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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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꼭 잘 익혀서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친구들과 의정부 어느 쯤에서 제육볶음을 먹고 귀가해 자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고추장에 버무려져 조리된 그 고기가 덜 익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세균탓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날의 고통만은 잊지 못한다.

그 뒤로 나는 삼겹살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노랗게 구워질 때 까지 기다려서 먹고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돼지불고기도 혹시 익지 않으면 어쩌나 하여 늘 조바심치면서 오래 불에서 익혀 상에 올렸다.

돼지를 키우던 환경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 모든 추억의 근원지였던 외가 뿐 아니라 돼지를 키우며 살던 그 어떤 누구의 돼지우리도 거기서 거기였다.

먹다 남은 음식이 모아져 가는 곳, 10m전방에서도 알 수 있는 돼지우리의 냄새, 돼지발을 늘 적시고 있는 분변에 버무려진 지푸라기들, 그래서 다들 돼지고기는 잘 익혀서 먹으라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사의 환경이 바뀌고 동물복지가 운운되는 이 시대에도 나의 돼지고기완숙에 대한 고집은 지켜져 왔다. 그런데 그 오랜 관습의 틀을 깨는 사건이 내게 일어났다.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의 워크숍이 지리산 인근에서 1박2일로 진행되었는데 돼지고기에 대한 공부로 첫날 저녁을 남원의 버크셔K로 먹게 되면서다.

불판의 온도는 중간 정도로 하고 불판 전체에 고루 열기가 전달되도록 한 뒤 뒷다리 살을 얹어 굽는데 육즙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굳이 고기를 맛있게 굽는 비법을 든다면 적절한 시기에 딱 한 번만 뒤집고 먹는데 핏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살짝만 굽는 것이다.

부위별 맛이 다 특별하지만 목살 부위를 먹고는 소고기스테이크 맛이 난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육질의 부드러움, 풍부한 육즙 등 여러 평들이 있었지만 비계를 씹는 아삭한 식감도 빼놓을 수 없다. 콜레스테롤이니 체중조절 등의 이유를 들어 기피하던 돼지비계를 다시 평가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돼지고기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산도(pH)가 이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산도가 높으면 고기를 구울 때 육즙이 잘 빠져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융점이 일반 돼지에 비해 낮으니 당연히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을 수밖에 없고 올레인산의 경우 일반 돈육보다 25% 이상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특히 버크셔K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돼지로는 생산이 힘든 생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의 뒷다리를 통째로 천일염에 절여 신선한 공기만을 이용하여 16~36개월 이상 오래 숙성시키는 육가공품이 생햄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생햄에는 스페인의 하몽이나 이탈리아의 파르마, 중국 금화햄 등이 있다. 모두 수작업을 통해 소량 생산해 지역 브랜드를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들인데 남원의 버크셔K로 숙성시키는 생햄의 맛과 향이 그들과 어깨를 견줄만하여 기쁘다.

곧 추석이고 가을이다. 음기가 강한 동물 돼지고기를 먹으면 좋은 계절이다. 가마솥 소당 위에서 지글거리며 녹두전을 부쳐내던 돼지비계도 좋고 바게뜨에 얹거나 와인과 함께 먹으면 어울릴 생햄도 좋다. 버크셔K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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