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명절에도 시름 깊은 축산 농가
한우·한돈 본전장사에 수요 증가도 무의미

  • 입력 2013.09.06 13:40
  • 기자명 권순창·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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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앞두고 축산물의 수요가 일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축산 농가들은 여전히 시름이 깊다. 본전에 가까운 매출 소득에 다소간의 수요 증가도 사실상 무의미한 실정이다.

고질적인 산지가 폭락 및 사료비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우 농가와 추석 이후 예상되는 급격한 가격 감소가 벌써부터 부담스러운 양돈 농가에게 명절 대목이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다. 추석을 맞아도 웃지 못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근심을 이어가고 있는 축산 농가들의 상황을 살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표정 굳은 명절 우시장 풍경

지난 3일 충북 제천 우시장에 모인 농민들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소위 대목이라 하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진 축산업 상황 속에 딱히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이날 시장에 나온 소는 20여두. 출하된 비육우를 보충하기 위해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져야 할 추석 우시장이지만 명절이 무색하리만치 한산한 모습이었다.

“얼마고 뭐고 주는대로 팔아야지 기대치는 없어. 밑지고도 팔 수 있는 거고. 예전에는 소값 기준이 있어 얼마짜리다 했지만 지금은 기준도 없어.”

송아지를 팔러 나온 농민에게 기대가격을 묻자 시무룩한 표정에 푸념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한쪽에서는 수 차례의 실랑이 끝에 서로 양보해 거래가 성립됐다.

“두마리 가져와서 550만원에 다 팔았어요. 근데 600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50만원이 날아갔어.”

그나마 판매에 성공한 농민의 소탈한 웃음 속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농민들은 현재 한우 사육이 ‘본전이면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 지난 3일 제천 우시장에 모인 농민들이 매물로 나온 소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우시장에서는 20여두의 소 가운데 10두가 거래됐다.

추석 목전이라 소비자 수요는 조금 는 것 같지만 체감할 만큼의 가격 상승은 없고,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수요 증가도 큰 의미는 없다는 설명이다. 수익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주저없이 사료값 인상을 꼽았다.

우시장이 열렸던 3일 전국 한우 평균 농가 수취가격은 600kg당 484만6000원. 30개월 비육우 기준으로 투입되는 사료값은 400만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여기에 기타 생산비를 제하면 ‘본전치기’라는 농민들의 설명과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농민들은 유명무실한 기존의 보상제도보다 당장 농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사료비 지원을 호소했다.

“직불금이라고 두당 만삼천원 나오는거, 도움 하나도 안돼요. 현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료값을 좀 조정해 줘야돼.”

160두 한우를 키우는 유성렬(60)씨의 말이 주변의 공감을 자아냈다. 정부나 농·축협이 부쩍 관심을 갖고 있는 조사료 지원 사업은 아직도 진행이 더딘듯 하다. 농민들은 제천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조사료 생산을 하는 농가는 더러 있지만 지원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제천·단양지역 고유 한우브랜드인 황초와우의 유도식 회장도 사료 문제를 지적하며 “정책에 신빙성이 없어 더욱 힘들다. 지금의 정책들은 서류 구색 맞추기와 생색내기 용도밖에 안된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우시장은 시종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다. 거래상황이 좋지 않아 개장 25분만에 그냥 귀가하는 농민도 있었고, 거래는 10건만이 성사됐다. 누구보다 농민들이 함박웃음을 지어야 할 추석 목전이었지만 파는 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가격으로, 사는 이는 비싸게 키워 헐값에 팔아야 할 걱정으로 모두가 씁쓸해하는 모습이었다.

양돈 농민 “추석 이후 급속도로 비수기 접어 들 것”

“추석은 뭔 추석이여. 빚 어떻게 갚아야 하고 언제 어느 때 관둬야 되나 늘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알기론 이 지역에서 축산 하는 사람들 중 80프로는 어느 정도 조건만 되면 다 관둘 걸요.”

추석을 앞두고 돼지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양돈 농민들은 추석 이후 닥쳐올 비수기에 걱정부터 앞서는 상황. 추석을 목전에 두고도 호황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양돈농민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지난 2일 충북 제천에서 만난 전태재 씨는 “명절 밑이라고 해서 돼지가격에 크대 기대하거나 그런 건 없다. 작년부터 돈가가 별로였는데 이제 겨우 생산비나 건지는 상황이고, 추석이후부터 돼지가격이 내려갈 거라는데 그게 문제”라며 걱정을 털어놨다.

실제로 농촌경제연구원의 9월 관측에 따르면 추석 이후 돼지고기 수요 감소로 인해 1kg 당 지육가격은 지난해 동월 보다 10~15%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10월 역시 3,000원 이하로 형성돼 최악의 가격 폭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여름 불볕더위도 가격 폭락에 불을 지폈다.

강화의 한상수 씨는 “양돈을 33년 했는데 올여름에는 30년만의 더위니 뭐니 해서 돼지가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보상증체라고 해서 돼지가 살기 좋은 날씨가 돼야 다시 성장이 된다. 출하해야할 시기가 미뤄 추석이후 물량이 쏟아져 파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도 주요 언론들은 추석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돼지고기를 지목하고 있다. 폭염 때문에 돼지가 살이 오르지 않자 제값 받기가 어려워진 농민들이 일부러 출하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에 한 씨는 “그건 모르고하는 이야기다. 무더위로 돼지는 자라지 않았고, 새끼는 계속 태어나서 돈사는 더욱 꽉꽉 들어차고 있다. 자돈사에서 육성사, 육성사에서 비육사로 이동해야 하는데 어느 농민이 가격이 폭락할 것을 알면서도 돼지를 일부러 출하하지 않겠느냐”며 답답해 했다.

이처럼 농민들은 추석 대목을 기대할 겨를도 없이 이어질 폭락사태 대비에 여념이 없다. 추석을 앞두고 소규모 양돈 농가들은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제천의 전태재 씨는 “돼지를 많이 키우는 사람들은 4~5만두씩 한다. 그런데 제천은 16농가 다 합해봐야 2만6,000두밖에 안된다. 우리는 사료구매자금 지원 받을려고 모돈감축 나서서 하는데, 기업농은 사료구매자금 한 두푼 받으려고 모돈 감축을 하지 않는다. 추석 이후 출하 물량은 늘어나고, 가격은 폭락하는데 기업농과 소규모 농가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 결국 소규모 농가만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은 “옛날에는 돼지 한 마리에 20만원 받아도 잘 받았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료 값도, 기본 생산비도 몇 배로 뛰었다. 돼지 한 마리에 40만원을 받아도 안 남는 이유가 그것이다. 힘이든다”고 말을 줄였다.

한편 한돈농가들은 모돈감축을 통해 사육마리수를 꾸준히 줄여가고 있지만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국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방안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권순창·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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