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감자

  • 입력 2013.06.30 23:01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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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계절이다. 하지감자를 캔다. 알이 굵직한 게 잘 삶아 놓으면 파실한 감자로 샛거리는 충분할 것 같다. 감자처럼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쪄서 먹으면 그 자체가 한 끼를 대신할 수 있다. 여름에 짭조름한 반찬거리인 알이 잘잘한 간장조림까지 감자는 소박한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었다.

부여에서 보내온 감자를 보는 순간 현 정국에 대한 마뜩잖음이 주먹감자를 떠올리게 한다. 몇 일전 이란과 우리나라의 축구시합이 이란의 승리로 끝나자 이란감독이 우리감독에게 주먹감자를 먹여 말들이 많다. 이 주먹감자는 야유와 조롱이 묻어있다. 60년대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철로변에서 놀던 아이들이 기차를 향해 주먹감자를 먹이곤 했다. 우리세대들이 그랬다. 그때는 분노와 저주의 표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새로 부임한 주한 미대사 그레고린가 하는 자와 지방순시를 하는데 예의 주먹감자가 날아왔다고 한다. 그레고리가 대통령에게 “저건 뭐요” 하고 물었단다. 순간 이승만은 당황하지 않고 “당신을 환영한다는 뜻이요” 하고 거짓으로 둘러댔다고 한다. 그 후 그레고리는 상대를 환영한다는 한국식 표현으로 곧잘 주먹감자를 먹여댔다는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문화의 후진성을 애달파하던 애국지사(?)들이 만들어 낸 말이지 싶다.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이 깊어지자 스스로 우리문화를 핫바지로 격하시키신 분들이 우리사회의 주류였으니까 그럴법도 하다.

그런데 주먹감자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욕이다. ‘브라 도뇌르’(영광의 팔)라는 고상한 프랑스 이름이 주먹감자의 대표격이란다. 그런걸로 봐서 오히려 서양문화의 수입과 함께 묻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기찻길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만들어 졌고 실제 그 길은 평온하던 삶터에서 쫓겨나게 했고 수탈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차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니 기차가 오면 주먹감자를 날렸던 것으로 보인다. 기차는 주먹감자를 싣고 왔고 주먹감자는 예의 기차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렇게 거의 잊은 듯한 주먹감자가 축구시합에서 제대로 날아들어 어줍잖은 애국심에 불을 지피고 있다.

감자를 캐는 요즘 감자도 풍년이고 주먹감자도 풍년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주먹감자가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쌀값 4,000원 인상에 청와대를 향한 분노의 주먹감자는 왜 없는 것인가. 쌀 관세화 개방은 결국 쌀도 포기하겠다는 것인데 그 정책을 만드는 자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농업을 말아먹으려하는 세력에 분노의 주먹감자를 날리자. 감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다만 주먹을 쥐면 꼭 감자만한 데서 주먹감자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생명을 담보하는 식량으로 신의 축복을 받은 감자가 주먹감자로 변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표현이다. 청와대에 주먹감자를 보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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