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마을 16 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6.24 08:3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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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준석이 늬도 여기 서명해라.”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를 하던 태성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뭔 서명? 인터체인지 이름 바꾸는 거는 벌써 했는데.”
  “이건 그기 아니구, 중학교 읎애는 거 반대하는 서명이여.”

  준석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준석이 졸업한 면내에 하나 있는 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문이더니,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 면에 있는 네 개의 중학교가 통합되어 기숙형 중학교로 바뀐다고 했다. 면 단위의 중학교에 학생 수가 점점 줄어서 몇 개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 군데로 몰아서 큰 중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이 먹고 자며 학교에 다니게 한다는 거였다. 다른 군에서 그렇게 한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의 성적도 좋아지고 여러 모로 좋은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근데 그걸 왜 반대하는 거여? 여그 중학교에 애들이 너무 적어서 큰일이라고 하더니만, 기숙형이라구 해두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니께 돈을 내지두 않는 게구. 괜찮은 거 아녀?”

  어차피 중학교에 다닐 자식도 없는 터라 준석에게는 별 영양가 없는 일이었다.
  “그게 아니지. 그 기숙형 중학굔가 뭔가 하는 게 우리 면으루 오는 거면 모를까, 저긔 안정면에 슨다는 거 아녀? 그러믄 괜히 우리 중학교만 읎어지구 마는 거지. 우리 면 입장에서는 아무 이득될 기 읎는 거라. 더군다나 우리가 졸업한 학굔데 그기 읎어져버리믄 될 일이여? 이것은 절대 반대해야 될 일이라구.”

  준석은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용지에 이름과 주소를 쓰고 서명을 했다.
  “고 밑에다 제수씨 이름으루도 하나 혀. 전 면민들 서명을 다 받기루 했으니께.”
  “암만 마누라래두 서명을 대리루 해두 되는 거여? 글씨두 같은데.”
  “누가 그런 걸 보겄냐? 딴 사람두 아니구 식군데 어뗘? 그러니께 바루 밑에다 허지 말구 멫 칸 띄워서 하라구.”

 

요즘 서명할 일이 많다고 쓴 웃음을 지으며 준석은 태성이 하라는 대로 아내 이름으로 또 서명을 했다. 지난 번 인터체인지 건도 비슷한 경우였다. 고속도로를 닦으며 인터체인지가 들어서는데 도로공사에서 인터체인지 이름을 이웃 면인 안정면을 따서 안정인터체인지로 결정했다는 거였다.

그런데 실제로 인터체인지에 들어가는 땅의 면적은 산동면이 훨씬 더 많았다. 도로공사에서는 톨게이트가 들어서는 곳이 안정면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땅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게 먼저 아니냐며 산동면에서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대체 인터체인지 이름이 왜 그리 중요한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그럴 만하기는 했다. 

  어느 고속도로이고 인터체인지 일대는 여러 모로 개발이 될 가능성이 많고, 당연히 땅값이 오르게 되는데 일단 이름이 산동인터체인지로 되어야 외지인들에게 산동면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 않을 거냐는 게 첫째 이유였다.

그렇게 고속도로에 이름이 붙으면 백년이 가도 알지 못할 산동면이라는 촌 동네가 단숨에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고도 했다. 면내에서 나는 채소며 과일 같은 농산물을 서울로 낼 적에 포장 박스에 산동면 작목반이니, 산동 사과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데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나마 이름이 귀에 익은 소백산을 가져다 붙이려니, 산동면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미 그 동네에서 쓰고 있어서 무단으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인터체인지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 그것이 산동면의 브랜드 효과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고속도로가 뚫리고 인터체인지가 들어서면 땅값이 엄청 오를 거라고 기대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왕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이름자부터 제대로 붙여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겠지요. 쫌 씁쓸하네요. 저야 땅도 없지만. 형님도 혹시 땅값이 오르면 팔 마음이 있으세요?”

  회관에 모여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서명을 마치고나서 경태가 준석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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