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은 골초였다

  • 입력 2013.06.14 10:59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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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지 마는지 타는 가슴을 더 태운다. 날씨야 그러든지 말든지 충북농업인회관에 도착하자 왕년의 투쟁가들이 다 모였다. 그중에서도 이재호 의장이 반가웠는지 그의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가란다.

이재호 의장은 담배농사만 전문으로 짓는다. 전농 초기 담배농가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몇몇 정도다. 신탄진 연초제조창 싸움은 그에겐 전설로 남아 있다. 아직도 담배농사만을 고집하는 이재호 의장도 골초다.

담배에 대한 혐오론자는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으로부터 송시열, 이익, 이덕무 등이다. 이들은 지금의 시점으로 봐도 딱 떨어지는 이론으로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음을 강조했다.

반대로 장유는 담배 예찬론자이고 골초였다. 그는 담배의 화기 때문에 폐를 해칠 것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를 혐오하는 광해군이 임금 앞에서 담배피우는 것을 금지시켰다.

오늘날 어른 앞에서 술은 마셔도 담배는 못 피우게 하는 것이 여기서 비롯된 담배예절이다. 정조도 애연가였다. 과거시제로 ‘남령초’라는 시제를 직접 내리기도 했다.

유득공과 정약용은 지독한 골초였다. 그런데 다산과 정조의 담배애호가 정치적 결정과정에 관여한 사실이 있어 흥미롭다. 정조가 농사를 권하는 농서와 상소를 구하는 윤음을 내렸다. 여기에 응한 상소에 담배경작을 금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기름진 땅이 모두 담배밭이 되었으니 농사가 형편없이 되었다”는 것이다.

 담배를 남녀노소 모두 즐기고 양반들은 담배피우는 도구까지 사치를 하는 정도였으니 담배소비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담배가 환금성작물이 되어 농사도 팽개치고 담배만 지은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자신의 상소문에 “담배의 약리적 효과 때문에 경작을 금할 수 없다. 유휴산간을 이용해 경작토록 하자. 이는 백성들의 기호품을 충당하고 농민들의 소득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역시 애연가였던 정조가 받아들여 그렇게 시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담배 주생산지는 충북과 경북의 산골이다.다산의 오랜 귀양살이를 달래주던 담배가 곡물생산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거기서 농림예산 5조2천억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마른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형국이라고 농민들은 말한다. 직접 챙기겠다는 농업공약이 겨우 예산 삭감이냐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고 농민단체들은 반발한다.

상당한 시간동안 설왕설래하던 담배농사까지도 백성들의 욕구를 무시하지 않는 쪽에서 선택했던 옛 정치인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특히 농민들의 삶과 식량문제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결과물이다. 정약용은 골초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훈계하는 등 농사와 농민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정치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유당전서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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