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잔대, 잠꾸러기 잔대

  • 입력 2013.06.03 14:58
  • 기자명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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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한 후로 가끔 친정어머니와 함께 나물도 뜯고 산책도 할 겸 해서 산에 가는 날이 있다.

요즘은 산에 가서 더덕이나 도라지 등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숲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가끔 숲을 헤치는 손에 의해 흔들리는 나무나 풀들 속에서 사람을 혹하게 하는 더덕의 향을 만나기도 하여 몇 뿌리를 캐오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기에 흰색과 보라색의 예쁜 꽃을 피워내는 도라지쯤은 충분히 식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내가 뿌리는 더덕에 가깝고 꽃을 달지 않은 어린잎은 도라지를 닮은 한 식물을 만나는 산행을 했던 날이 있었다.

늘 대충 보아왔던 도라지를 닮았기에 캐야겠다며 수선을 떠는 내게 어머니는 도라지가 아니라 잠꾸러기 잔대라고 알려 주셨는데 생육 조건이 맞지 않으면 산삼처럼 몇 년씩도 싹을 틔우지 않고 잠을 잔다고 하여 ‘잔대’라고 부른다 하셨다.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캐먹었다 하시며 오래 묵은 잔대는 산삼보다 낫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잠을 자는 식물이 잔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 이름의 연유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나 재미있어 그날 이후로 잔대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더덕과 함께 초롱과에 속하는 잔대는 딱주, 잠다귀라고도 불리는 다년생의 식물이다.

한방에서는 사삼(沙蔘)이라 부르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더덕이 사삼이라 불렸으나 최근에 사삼은 더덕이 아니고 잔대임이 밝혀졌으며 더덕은 따로 양유근(羊乳根), 혹은 산해라(山海螺)라 부른다. 하지만 더덕과 잔대는 사람들이 이름을 혼용했을 정도로 그 효능이 비슷하여 잔대를 더덕의 사촌이라 말하는 친구도 있다. 잔대는 더덕과 달리 쓴맛이 없이 달며 성질은 약간 서늘하다.

동의보감에는 잔대가 폐(肺)와 신(腎), 비(脾)를 이롭게 하며 폐의 열을 내리고 고름을 빼주며 부은 것을 가라앉게 하고 기침을 멎게 하니 나물로 먹어도 좋다고 하였다. 동네 어른들께서는 목에 가래가 끓고 기침이 나면 맥문동과 함께 잔대를 끓여 드시기도 하고, 허리가 아플 때에는 늙은 호박에 잔대 한 줌과 북어 두어 마리를 넣고 끓여 드시기도 한다.

오랜 경험에 의한 민간요법이겠지만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폐(肺)에 찬 기운이 침입했을 때에는 인삼을 쓰고 폐(肺)에 열(熱)이 있을 때는 사삼을 쓰라 하였으니 폐에 寒邪가 침입해서 생긴 가래, 기침에 먹는다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잔대의 어린 싹은 두툼하고 부드러워 튀김이나 쌈채로 먹어도 좋고, 데쳐서 고추장이나 된장 혹은 간장, 소금 등에 무쳐 먹어도 좋고, 장아찌로 만들어 두었다가 두고두고 먹어도 좋다. 뿌리는 더덕, 도라지와 함께 구워도 먹고 무쳐도 먹고 볶아도 먹으며, 정과로 만들어 아이들 간식으로 주어도 또한 좋다.

혹 운이 좋아 몇 년 묵은 잔대를 만났다면 술과 잔대를 10:3으로 하여 침출주로 만들어 식전에 반주로 한 잔씩 하여도 좋을 것이다. 약재로 분류되어 약으로만 알고 있던 식물들이 농가에서 재배되어 이미 가락동 시장에서 식재료로 팔리고 있는 추세다.

그런 흐름을 타고 강원도 인제에서는 혼탁한 공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도시인의 건강을 지켜줄 잔대가 대량으로 재배되어 잎채소로 식탁에 오르고 있으니 주목할 일이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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