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축제를 위해

  • 입력 2013.05.19 17:32
  • 기자명 한승호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 자는 말을 되도록 아꼈다. 낮은 흐느낌, 긴 침묵, 어딘가로 부터 부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의 한 편을 채우고 또 채웠다.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은 채 혹 어떤 이는 등을 돌린 채 서 있었을 뿐이었다.

故 정광훈 의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과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라는 직함보다 ‘Down Down WTO, Down Down FTA, Down Down USA’를 부르짖던 그 구릿빛 얼굴로, 그 뜨거운 목청으로 사람들 뇌리에 기억되는 이. 2년 전,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지원 활동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그를 사람들은 ‘민중의 벗’이라 일컬었다.

‘민중의 벗’을 보내고 난 뒤 2년,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망월동에 모여 생전의 그를 추모했다. 다시 한 번 “혁명의 축제를 준비하자”고도 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 논란에 면목이 없다”고도 했다.

이광석 전농 의장은 살아생전 그이가 했던 ‘아슴찬’이란 말로 2주기를 추모하는 현실의 생경함을 토로했다. 그가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에 한걸음 더 다가서지 못하고 분열과 반목으로 아등바등 되는 현실의 버거움을 망월동을 찾은 사람들과 무거운 마음으로 공유했다. 하여, 자리를 함께한 이들은 그에게 ‘곁으로 돌아오라’ 시를 띄우고 편지를 쓰고 노래를 바쳤다.

정영이 구례군 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은 ‘민중의 벗 정광훈 의장님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웠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청년들의 아우성과 대기업의 농업 진출에 분노하는 농민들이 있고 골프장 투쟁을 하는 강원도,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길고 지루한 투쟁을 이어가는 영광, 택배노동자들의 파업, 제주 강정투쟁 등 자유롭지 않은 모든 투쟁의 현장에 의장님의 정신이 배어있겠지요?”라고 말하며 “ 각자의 처지와 조건은 다르지만 끝내 한 길에 하나가 되는 혁명의 축제를 위해 두발 내딛고 선 현장에서 먼저 축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하던 오월의 어느 날, 망월동 하늘은 시퍼렇게 푸른색이었다. 서럽게 날이 선 것처럼.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