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려야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 소장

  • 입력 2013.04.05 09:56
  • 기자명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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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농업이란 말이 매우 생소하다. 어떤 뜻인가?

한 개인 농가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지역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 농부의 인생 이야기, 지역 특유의 자연조건, 그리고 오랜 세월 내려온 사람들의 삶의 흔적 등을 이야기로 꾸미고 그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해당 농가와 지역의 농산물을 선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과 허구를 가리지 않는다. 마치 영화처럼 실제 현상을 보고 거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동영상, 사진, 글 등을 인터넷이나 광고매체를 통해 전파한다.

▶ 어떤 계기로 이야기농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또 기존 농산물 홍보, 유통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야기농업을 시작하기 전 유기농산물 유통을 20년 넘게 했었다. 20년간의 농산물 유통으로 깨달은 점은 농산물을 단순히 상품으로 바라보게 되면 지금의 농업, 농촌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농민 너는 생산만 해’, ‘소비자 너는 선택만 해’라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감이 전달되면서 더불어 상품이 오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야기농업이다.

▶ 실제로 만들었던 사례가 있나?

무주의 뺀질이와 멍텅구리 사과가 기억에 남는다. 소고기에 안심과 등심이 있듯이 사과도 마찬가지다. 사과나무의 중심에서 나는 사과는 색과 맛이 좋아 범생이라 이름 짓고 주변 사과는 알은 크지만 푸르러 더 익어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멍텅구리라 이름 짓는다.

가지 끝 사과는 알은 커도 덜 익어서 뺀질이라 이름 짓는다. 사과농사를 짓는 농민이 범생이는 A창고에, 멍텅구리는 B창고, 뺀질이는 C창고로 나눠 저장하고 잘 돌봐가며 출하시기를 달리해 내 놓으면 모두 맛있는 사과가 된다.

이 이야기를 사람에 대입해 잘 돌보면 제 역할을 한다는 성장스토리로 꾸몄다. 이 동영상을 접한 모 건설회사가 이야기가 매우 재밌었다면서 2,000박스의 사과를 주문했다. 단적인 예지만 스토리가 곧 소득이 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농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한편으론 농민들이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농민들의 반응은 정말 뜨겁다. 농민들이 그동안 갈구하고 있던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한번 되돌아보자. 그동안 세상은 농민들로부터 물건만 쏙 빼가고 가격은 자기들이 다 결정하고 농민을 마치 생산하는 기계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농민 스스로가 세상에 ‘나 여기 있소, 나 이런 사람이오’라고 드러낼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다. 농민이 스스로 난 어떤 사람이고 내가 발붙인 땅이 어떤 곳이고 내가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중심이고 농산물의 거래는 부차적인 문제다.

 ▶ 소비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어떤 농민의 삶을 가족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재밌고 슬프고 아프고 한 사연이 많겠는가. 소비자들은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접하면 ‘아 당신이 그렇게 생산했군요’, ‘당신은 세상을 그렇게 보는군요’, ‘같은 값이라면 그 댁 사과를 보내주세요’하고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야기의 맥락과 서사에 힘입어 소비자가 농민에게 공감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야기를 잘 전달하면 바로 ‘공감’이 시작된다. 이것이 농업문제를 해결할 열쇠고 농민들과 농업계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농민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앞으로는 농업문제도 젊은 세대들이 함께해야 풀릴 것이다. 농업에도 그림 잘 그리는 사람, 음악을 잘 만드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을 박 터지는 경쟁에 매몰시키지 말고 농업계에서 경제문제도 해결하고 자신의 재능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후배를 양성하려 한다.

농민들도 단순히 시골 무지렁이처럼 농사만 지을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는 농민들이 전국에 너무나 많다. 잊고 있던 자신의 재능을 이야기농업으로 풀어봤으면 한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당당히 서자.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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