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용쌀 지원사업, 교정이 필요하다

정부 아닌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주도’
3년차 사업 부작용 속출

  • 입력 2013.04.05 09:2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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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소비처 확보 차원에서 시행한 ‘가공용쌀 계약재배 지원사업’이 시범사업 3년차에 접어들었다.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의 일환으로 시행 중인 가공용쌀 계약재배는 생산 농민에게는 소득원 창출과 가공업체에게는 고품질 국산쌀 확보라는 두 가지 큰 목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생산 농민과 기업의 ‘상생’이라는 의미는 퇴색된 채 기업중심의 사업으로 정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장에서는 “농민은 없고 기업만 남은 사업”이라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 가공용쌀 계약재배 지원사업이 협회 주도로 진행되면서 생산농가의 불만이 불거지고 있다.

쌀가공식품, 국산쌀로 만들어 보자

“전국 농가 평균 조수익을 보장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2일 이종규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 상무는 ‘가공용쌀 계약재배 지원사업’의 첫 목표로 생산자와 가공업체의 ‘상생’을 들었다. 쌀가공업체도 공급자인 생산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벼재배 농가의 소득 문제는 각별히 신경 쓴다는 뜻이다.

이종규 상무는 가공용쌀 계약재배 지원사업이 시작된 배경에 대해 “MMA물량으로 들어온 수입쌀로 식품가공을 하고는 있지만, 가공식품도 품질 고급화추세에 따라 국내산 원료 수요가 필요했다. 또 밥쌀 소비가 줄고 있는 상황에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쌀생산 기반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공용쌀을 재배하다 유사시 밥쌀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자는 것이다.

협회는 가공쌀 기반 확보에 대해 정부측에 부단히 설명했고, 그 노력은 성과를 낳았다. 쌀 과잉 생산에 골머리를 앓던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는 2010년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고 논에 벼가 아닌 타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ha당 300만원을 지원하며, 2011년부터는 가공용쌀에 대해서도 ha당 22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단, 이 사업에 참여하면 변동직불금을 받을 수 없다.

농식품부는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의 가공쌀 지원사업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단계 시범사업으로 시행하고, 내년부터는 쌀가공사업육성법에 따른 본사업으로 이관할 계획이다.

이종규 상무는 “2014년까지 MMA쌀이 의무수입 돼 업체들은 원료공급을 예측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의무수입 기간이 끝나는 2015년부터는 원료공급이 불투명하다. 어차피 사업체는 성장할 거고 소비량도 늘어가므로, 농가 입장에서도 가공용쌀 재배는 비전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협회 횡포” 불만 가중

문제는 협회 주도로 모든 게 결정 난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8일 aT센터에서 올해 가공용쌀 계약재배 관련 간담회가 있었다.

이날 협회는 ▲10아르당 620kg(보람찬 벼, 정곡 기준) 생산 공급이 가능한 업체 ▲벼 매입가 1,032원/kg(산물벼), 수확기 쌀값 확정시 10% 범위 내에서 확정지급 단가 산정 ▲쌀 계약 단가 1,605원/kg(백미)이라는 내용을 밝혔다.

이 자료를 확인한 농민들은 매입가격부터 문제 삼았다.

전북의 농민 A씨는 “올해 처음 사업에 참여하는데, 작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격부터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협회는 가격을 최대 생산량 기준으로 정해, 결과적으로 최저가를 제시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더구나 올 한해 농사를 짓고 수확기 (밥쌀용)시세의 8천원에서 1만원 정도 적게 판매하겠다는 융통성 있는 계약서를 생산자와 RPC, 업체가 작성했는데도, 쌀가공협회가 직인을 찍어 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협회가 제시한 가격대로 낮춰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직인을 찍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다. 한마디로 횡포다”라고 분개했다.

쌀가공협회의 직인은 지자체에 가공용쌀 계약재배 신청서를 접수할 때 필수 조건이다. 농민들은 ‘직인의 위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협회가 원하는 대로 납품가 ‘kg당 1,605원’으로 바꿔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충남 B농민은 “다수확 품종이니까, 농사만 제대로 된다면 소득면에서 괜찮다. 하지만 지난해 수확기 무렵 연이은 태풍으로 벼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협회도 시세가 오르면 4천원을 더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결국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씁쓸해 했다.

B농민은 “농민 입장만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올해 협회에 모이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미 가격을 결정해 놓고 통보를 하더라. 협회 이득만 취하지 말고 사업을 지속시키려면 절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방적 행태를 거듭 지적했다.

 “농식품부 지침대로만 하라”

RPC 관계자 C씨는 “현재 가공협회는 최고 생산량을 기준으로 가격을 산정했다. 지역별로 생산량이 다른데, 획일적인 가격으로 계약을 하라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량과 가격은 계약주체들에게 맡기면 된다. 생산농가와 수요자가 이득을 같이 나누지 않으면 같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농식품부 기본지침에는 작황(생산량)에 따른 공급가격 기준점이 있다. 이대로만 사업시행을 해도 지금처럼 계약부터 불만이 고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농민은 “가장 합리적인 안은 지자체가 이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것”이라며 “협회가 사업을 자기주도로 끌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쌀부정유통 방지라는데, 그건 자기 합리화고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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