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辱)을 허(許)하라

  • 입력 2013.03.03 23:30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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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는 데선 나라님도 욕한다”는 속담이 있다. 억눌리고 밀려난 자들이 내뱉는 욕은 결국 자신을 향한 배설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 것 조차도 못하게 하는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그 예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다. 두 정권의 종말은 국민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분출하는 욕을 통제하면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는 이중성의 사회이다. 분명 욕하지 말라고 어린 아이때부터 배운다. 그러나 현실에선 입만 열면 욕이 튀어 나온다. 초등학생, 중학생은 욕이 빠지면 말이 되질 않아 대화가 어렵다고 할 정도다. 하지 말라고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풍선을 누른 것처럼 어느 순간 뻥 터지고 만다. MB정권은 욕먹을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사회, 정치적 욕의 영역에 철조망을 쳐댔다. 문화부 장관에 유인촌이 올라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 그가 대놓고 욕한 일들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 된다.

방송 장악이나 인터넷상의 실명제는 나라님에게 불경스런 일들을 막아보자는 것이겠지만 들끓는 여론을 막아보자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청 앞 광장에 앉아있기만 해도 벌금을 물리고 청와대 앞에서 소리라도 치면 바로 유치장으로 끌어가는 통치행위는 결국 터져 나오는 국민적 열망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욕은 힘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이 땅에 소외받고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러니 그들이 내뱉는 욕 한마디는 정치적으로 볼 때 욕구의 표현이다. “이놈의 세상 망해 버려라”라고 내뱉는 욕은 결국 정권심판이란 정치적 용어를 함축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욕을 정치행위로 간주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어쩌면 선거라는 행위일 것이다. 욕을 구체적인 투표라는 행위로 행사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언로를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상소나 신문고들이 이런 정치행위에 해당한다. 요즘은 언론의 자유를 운운 하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자신들의 여론이 반영되지 못함에 분통을 터뜨린다. 오죽하면 쌍욕을 담아서 방송하는 팟캐스트 방송인 김어준, 정봉주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점을 알고는 있을까. 아버지 박정희의 무릎 아래서 쉽게, 빠르게 통치하는 법을 배웠을 법한데 그 시대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시대에서 개같이 벌어도 정승만 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박근혜정권은 이미 수많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가 무너졌다.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이 이 정권의 화두라면 화두일 텐데 이미 깨지고 조각나기 시작 했으니 말이다.

대통령은 욕먹는 자리다. 욕먹는 자리를 회피하면 국민대통합이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2월 28일로 쌍용차문제로 철탑에 오른 사람들이 100일을 맞았다. 모든 걸 접고 그들의 욕, 욕구를 들어라. 그리하여 통합의 물길을 열어젖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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