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학부모 학교가 3년만에 이룬 변화

작은 학교가 살아나니 마을에 활기 돌아
정부의 소규모학교 시각 전환 필요

  • 입력 2013.02.28 20:04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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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을 시작한 이래로 속속들이 소규모 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성과를 이룬 작은 학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폐교위기에서 벗어난 지역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지역공동체가 발 벗고 나서 폐교를 막아낸 영광 묘량중앙초등학교 졸업식 현장을 찾아가봤다. 작은 학교 강점을 십분 발휘해 학교와 지역을 살리는 작은 학교 살리기는 통폐합 정책 30년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전교생이 함께 축하해주는 전남 영광 모량중앙초교 졸업식.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교사, 학부모, 지역민의 얼굴에도 함박꽃이 핀다.

몰락 직전에서 벗어나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묘량중앙초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지난달 15일 학교강당에는 초등학교 전교생과 병설유치원생 그리고 학부모, 지역 어르신으로 강당이 가득 찼다. 학부모들은 “내년에는 좁아서 졸업식 여기서 못 하겠다”며 즐거워했다. 올해 졸업하는 학생은 3명, 입학생은 11명이다. 이로써 2012년 전교생 33명에서 올해 41명으로 늘어났다. 언제 폐교할지 모르니 시설투자를 하지 않던 교육청도 올해는 교실증축과 시설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묘량중앙초등학교는 2009년 8월 분교 또는 통폐합 예정 공문을 받았다. 당시 전교생은 13명으로 3분의 2가 읍내로 아이를 보내기 어려운 결손가정의 자녀와 귀농·귀촌 자녀들이 었다. 교사들은 인사 점수를 따거나 잠시 들러가는 곳으로 여겨 책임감은 보기 어려웠고 명예퇴직한 계약직 교원들이 대체하는 곳이었다. 아이를 입학시키고 싶지 않은 학교로, 몰락 직전 상태였다.

이런 묘량중앙초를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곳은 묘량면에 위치한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 공동체’였다. 권혁범 여민동락 팀장은 “농촌이 살아나려면 은퇴하고 귀농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와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의 자녀가 다닐 올바른 교육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명쾌하게 그 이유를 답했다.

통폐합 공문이 날라 오고 학부모 전원이 반대 의견을 모으고, 학교 살리기 모임을 만들어 대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2010년 여민동락에서 소형(15인승) 통학차량을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학생 유치를 시작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운영했다. 그리고 전라남도교육청 평가 지역 내 최우수 학교로 선정됐다. 이내 입소문을 타고 신입생 수가 차츰 늘어났다.

2011년 영광 읍내에서 아이들을 묘량중앙초등학교로 입학시킨 임옥경씨는 “전학을 시킨다고 하니 졸업은 큰 학교에서 시켜야 한다는 등 우려와 불안한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기 학교 좋다던데 하면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묘량중앙초등학교 졸업식, 무대가 가득 찼다. 전교생들이 졸업생들에게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학교가 살아나니 활력이 돌아

 묘량중앙초등학교 통폐합이 예고되고 학교를 살리자고 했을 때 마을 주민 반응은 냉랭했다. 과거 2차례에 걸친 학교 통폐합 과정에서 절망과 불신, 갈등의 골이 깊게 파여 있었던 탓이다.

9년 전 묘량면 내 묘량초등학교(구 황량면)와 묘량중앙초등학교(구 묘장면) 2개 학교 중 어느 곳을 폐교할 것인가를 두고 지역 내 다툼이 생겼다. 다툼이 커졌고 묘량초 학군 지역은 폐교를 결정했지만 묘량중앙초와 통합이 아니라 영광초로 학군을 옮겼다. 묘량중앙초는 남게 됐지만 같이 싸웠던 묘량중앙초 학부모 몇몇이 영광초로 아이들이 보냈다. 학교 통폐합은 지역 주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아이들이 늘어나고, 웃음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서 마을 분위기가 확 변했다. “학교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학교 살리기? 미쳤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젊은이들이 속속들이 귀농·귀촌을 하고 있다. 이제 묘량 가족 체육 한마당도 열면서 학교가 다시 지역민들과 어우러지고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구추이에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묘량초 폐교를 결정한 구 황량면(신천리·월암리·삼학리·연암리) 지역은 2009년 1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878명에서 756명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묘량중앙초를 살린 구 묘장면(운당리·삼효리·영양리·덕흥리)은 1,185명에서 1,205명으로 늘어났다.

광주에서 구 묘장면으로 귀농해 벼, 고추, 고구마 농사를 작게 짓고 있는 이은경씨는 “귀농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다. 너무 시골이면 힘들 것 같았고 여기는 젊은 사람이 많이 있어서 오게 됐다”며 “직장생활을 하면 엄마 직장에 맞춰서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일찍 끝나기라도 하면 갈 곳이 없어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이곳은 형, 친구들이 있고 마을이 보호하니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지역·학부모·학교 삼박자가 이뤄낸 변화

작은 학교 살리기가 성공했던 것은 지역, 학부모, 학교가 함께 협의하면서 민주적으로 진행했기에 가능했다.

학부모는 학부모의 학교 참여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한울타리’를 구성했다. 월 1회 이상의 정기모임을 하고 교육 강좌 개최, 재능기부 등 각종 지원을 논의한다. 입김이 센 학부모 몇몇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 한명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에도 직접 찾아가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학교는 교사와 학부모가 학교 운영을 논의하는 연석회의, 학생 자치 조직 강화 등 일상적인 소통구조를 마련하고 민주적인 학교 문화 형성에 노력한다.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도 의견수렴과 만족도 조사 등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여민동락은 각종 예체능 학원 수강을 100% 지원하고, 각종 체험활동도 개최한다. 그리고 무료 통학버스를 하루 4차례 운행한다. 등교와 방과 후 교실, 저녁 8시까지 진행되는 돌봄교실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진다. 농사일로 바쁜 학부모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학생과 학교는 맘 놓고 늦게까지 프로그램을 하게끔 한다. 권혁범 팀장은 “조손 가정 애들이 버스를 놓치면 덤프트럭이 다니는 위험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며 안쓰러웠던 그 순간을 전했다.

유류비와 수고비 한 푼 받지 않고 운행되던 통학버스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냉랭했던 지역주민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그리고 올해부터 교육청이 통학버스를 지원하게 됐다.

지역, 학부모, 학교 삼박자가 맞아 돌아가니 만족도가 높다. 묘량중앙초 방과 후 교사로 5년째 근무 중인 임옥경씨는 작은 학교 살리기 3년 만에 생긴 변화가 놀랍다고 했다. 묘량중앙초 출신이기도 한 임씨는 이 변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아이들을 전학시키고,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딸이 친구들하고 싸우고 삐쳐있는데 5학년 한명하고 6학년 한명이 달래주는 모습을 봤다. 전학을 시키면서 학생이 적어서 사회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사회성은 또래에게서만 생기는 게 아니라 선후배 관계에서도 형성된다”고 말했다.

학습 과정도 대만족이다. “아이들이 학교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는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교감선생님이 밤늦게까지 심고 가꾼 꽃이 피었을 때는 꽃 이름 맞추기도 하고, 잠자리채 들고 학교에서 뛰어노는데 이 학교가 가진 특색을 살린 생태학습이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변화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묘량중앙초 성향숙 교감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소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돼야 하고, 살만한 곳이 되려면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며 “인간성장면에서도 부모 밑에서 중학교까지는 있어야 한다. 통폐합되고 시군으로 가게 되면 통학이 어려우니까 자취,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다. 1개면에 1개 초등학교, 중학교는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 교감의 올해 포부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국악 오케스트라가 전국에서 손꼽히게 되는 것이다.

지역, 학부모, 학교 열의가 바꾼 것은 비단 마을과 학교뿐이 아니다. 아이들도 변화시켰다. “학교 재미있어요”(권민혁, 초3),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요”(김현기, 초5), “수학, 미술 빼고 다 재미있어요”(권민하, 초6), “수학이 제일 재미있어요”(김민수, 초2)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학교가 재밌냐는 질문에 답한다. 대답을 듣는 학부모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핀다.  

이은경, 권혁범, 김강선, 임옥경 학부모(왼쪽부터)가 여민동락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는 세계적 추세

작은 학교 살리기는 1993년 경기도 가평군 ‘두밀분교 살리기 운동’을 시작으로 교사단체, 농민단체, 학부모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경기도 남한산초, 2002년 송남초거산분교, 2003년 고산서초, 2005년 상주남부초, 2006년 부산금성초, 2007년 양평조현초, 2008년 순천송산분교 등. 성공비결은 농촌 지역의 특성과 장점을 십분 발휘한 교육과정운영과 학부모, 지역주민의 땀과 노력이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여러 국가도 농산어촌의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소규모 학교 교육을 위한 첫 시도는 작은 학교를 살려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1970년 중반 이후 무리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 저항에 맞닥뜨려 전체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1984년 경제 합리주의에서 교육효과 우선주의로 수정하고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재의 벽지교육 정책은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남아있다면 학교를 닫지 않는 것이다.

농산어촌 인구감소가 대두된 이후 정부의 소규모 학교 정책은 통폐합으로 학교 규모를 키워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지역 공동화를 부채질하고, 청장년층의 인구 유출을 촉진시켰다. 사각지대에 몰린 아이들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문제를 가져왔다. 반면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소규모 학교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한 작은 학교 살리기의 성과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농산어촌 교육을 접근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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