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거울

  • 입력 2013.02.22 11:1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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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로 ‘봄여름가을겨울’ 연재를 마감합니다. 

  이년 하고도 여덟 달 동안 130 편의 산문을 실었고 이제 귀한 지면에서 물러나게 되어 한 가닥 소회가 솟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돌아보면, 우연한 인연이 되어 농정신문에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돌아봄이 있었습니다. 우선 연재라는 강제(?)가 없었더라면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글들이었고, 일주일에 한번 쓰는 연재를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 있었습니다.

한없이 게으른 제가 글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제 주변과 스스로를 항상 주시해야 했지요. 마치 일주일 내내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쓸만 한 이야기가 덥석 물지 모르니까요. 때로는 마감 전날까지 입질이 없어 초조한 적도 있지요. 그래도 즐거운 초조함이었습니다.  

  저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집안에서 태어났고 얼치기이긴 하지만 저 역시 십구 년째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대개는 그저 생각 없이 무심히 보낸 세월이었는데, 연재를 통해 농사에 대한 제 안의 유전자를 발견하는 기쁨이 컸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어린 시절, 눈으로만 보았던 아버지의 농사짓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그 의미를 새삼 되새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농촌의 옛 모습이 제 가슴 속에서 다시 하나하나 떠오르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아련한 추억에 잠기고 그 시절을 되살리던 시간은 제가 앞으로 소설을 써나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제 이야기는 거개가 농사를 지으며 느낀 이야기였지만 때로는 현실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울분을 토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설익은 생각들을 맥락 없이 늘어놓은 듯하여 얼굴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너무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지면에 늘어놓는 거 아닐까 깊어 저어된 적도 있습니다만, 한 농부가 이 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며 겪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살이 좀 비친다 해도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정 부끄러운 이야기는 쓰지 못했습니다만, 아주 가리지는 말자는 처음 생각을 어느 정도는 지킨 것 같습니다. 

  연재 도중에, 어느 출판사 측에서 책으로 펴내자는 제안이 들어와 연재를 마치기도 전에, 그러니까 절반쯤 되었을 때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그대로 변용한 ‘사시사철’이란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서글픈 일이지만 제가 펴냈던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농촌살이에 대해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쓴 글들이 내 얼굴을 비치는 거울 같기도 합니다. 대개는 못나고 어리석은 모습이지만 때로는 추한 자본과 욕망의 늪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거울이 살아가는 내내 나를 돌아보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몇 독자 분들은 직접 전화를 걸어와 격려를 해주기도 하고 이메일을 보내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대개 저를 격려하고 어쭙잖은 글에서 감동을 했다는 말씀이어서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습니다. 특히 여주에 사시는 한 어르신은, 몇 차례 전화를 주시어 제 글에 무수히 등장하는 음주 장면을 걱정하시며 농촌의 젊은이로서 건강을 잘 지키라는 애정 어린 걱정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제목 그대로 일 년 열두 달, 농사짓는 얘기를 풀어서 한 해 정도 연재를 하려 했습니다만, 어쩌다가 두 배도 넘는 기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루하고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도 많아 진즉 죄송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알 수 없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땅의 농민으로,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 또 만나 뵙게 되길 바랍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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