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 입력 2013.02.15 11:21
  • 기자명 소설가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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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기어이 뒷산이 알몸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 초겨울, 몇 대의 트럭과 전기톱을 든 사내들이 들이닥쳐 산에 살던 나무들을 남김없이 베어버렸다. 베어진 나무들은 트럭에 실려 사라졌고 이 겨울, 나무들이 서 있던 자리는 앙상하게 눈에 덮여있다.

일 년쯤 전에 쓴 글과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우리 마을이 뒤란삼아 쓰던 야트막한 산이 건축업자에게 팔렸다. 매입한 사람은 산을 밀고 전원주택 수십 채를 짓겠다고 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경악했고 당연히 반대했다.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 차례 마을회의를 하고 모두가 반대한다는 결의를 했다. 그리고 주민 전체 이름으로 시(市)에 탄원서도 제출했다. 탄원서 문안은 당연히 내가 작성했고 주민을 대표하여 이장이 인터넷으로 접수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탄원서 중 얼마를 인용해야겠다.

<우리 마을은 야트막한 마을의 뒷산을 의지하여 형성되어 있습니다. 마을회관도 바로 산 밑에 있으며, 뒷산은 각 농가의 뒤란과도 같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에 뒷산의 존재는 마치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고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마을의 뒷산이 팔렸고 산을 산 사람은 산을 깎아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 채가 아니라 수십 채를 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산을 밀어내고 택지로 만든다는 게 도시의 아파트를 지을 때나 있는 일이지, 어떻게 자연부락의 뒷동산을 없애고 택지를 조성한다는 것인지 우리 주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산을 품 삼아 늘어선 농가들의 뒤로 늘 푸르던 산 대신 전원주택들이 늘어선다면 우리 마을은 영영 그 모습을 잃고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동산 개발을 위해 마을이 파괴되는 모습을 우리 주민들은 지켜볼 수 없습니다. 대체 택지를 조성해 전원주택을 분양하려는, 명백하게 투기가 분명한 사업을 위해 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한 마을이 파괴되어야 합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산을 밀어내고 높다랗게 지어진 근사한 전원주택들과, 옹색한 농가들이 두 줄로 늘어선 광경을! 마을 주민들이 논밭에서 땀을 흘릴 때, 높은 테라스에 나와 고기를 굽는 모습을! 아마 엽기적인 마을이라고 전국에 소문이 날지도 모릅니다. 산 주인은 자기 소유의 산을 택지로 전용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과 강, 바다와 같은 자연은 단순히 소유권만으로 무제한의 배타적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산을 의지하며 산과 더불어 살아온 마을공동체의 가치는 법과 행정의 논리를 떠나 지켜져야 할 덕목입니다.>

탄원서의 효과는 꽤 큰 듯했다. 공무원들이 찾아왔고 주민들의 동의서가 없으면 절대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이후 몇 번의 소동이 있었다. 우선 건축을 맡은 건설사에서 비밀리에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천만 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 나를 포함한 적극적인 반대자에게는 내용증명으로 협박편지를 보내왔다. 위의 탄원서 내용이 자신들을 투기꾼으로 묘사하여 명예훼손을 하였으니, 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유와 협박의 효과는 놀라웠다. 반대를 하고 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도 행정소송으로 결국 들어오게 되리라는 비관이 점점 퍼지더니, 하나 둘씩 반대의 대열에서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무지하고 겁 많은 이웃들에 대해 절망감이 엄습하여 나도 더 이상 앞에 서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은 마을 뒷산에서 멀리 떨어져 동의의 대상도 아니었고 언제부턴가, 마을 사람들이 나를 멀리하는 기색조차 느껴졌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결국 우리 마을은 산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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