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

  • 입력 2013.02.15 11:08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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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고 부자가 고 이병철 회장이었던 때가 있었다. 돈을 함부로 쓰거나 헤프거나 하면 네가 이병철이냐며 힐난을 하곤 했다. 그때쯤 고 이병철회장의 일화라고 세간에 소문난 일이 있다. 면접장에서 끈을 옭아맨 상자를 주면서 빨리 풀어보도록 시켰다는 것, 그런데 한 응시자가 문구용 칼로 잘라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응시자는 무조건 합격했다는 얘기다. 사실인지 만든 이야긴지는 알지 못한다. 70년대 산업화의 고속성장시기에 속도전을 불사하는 정신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일화일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 응시자는 이미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대한 신화를 알고 행동했을 거라 생각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풀어도 풀리지 않는, 그러니까 해결이 불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어느 날 고르디우스 황제가 타고 온 수레의 말고삐를 신전 앞에 묶어 두었는데 나중에 풀 수가 없었다. 그 매듭은 이미 신탁이 있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할 것이라는. 그래서 여러 사람이 덤벼들었으나 누구도 풀어내지 못했다.

알렉산더대왕이 그 앞을 지나다가 칼을 가져와 고삐 매듭을 잘라 버렸다. 이렇게 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랐다”는 표현은 복잡한 문제를 대담한 방법으로 풀었다는 뜻이 되었다.

알렉산더대왕의 결단은 빨리 고리를 푸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고리를 푸는 사람이 아시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신탁에 대한 믿음을 해체하는 데에 있었다. 사람들의 믿음이란 것이 공허해서 공리공논이 횡행하고 결속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결행이었다. 그걸 풀어야지 잘라서는 안 된다는 이의제기는 훗날 알렉산더가 아시아를 정복함으로 더 이상 군말이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존재한다. 농업문제만 보더라도 무엇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를 분간하기 어렵도록 꼬여있는 상태다. 농업농촌이 도무지 풀지 못할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얽혀져 있는데 인수위나 당선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듯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비밀주의로 나가는 당선자가 스스로 발밑을 어둡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농민단체들도 캄캄한 가운데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인지 새정부에 대한 농업농민정책을 유도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농 또한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고민이 깊다. 아직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어찌 풀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적 정치세력과 함께 제도권 진출요구는 2003년 당시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것 일게다. 전농의 한결같은 정치세력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농의 단결단합이 전제 돼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가는 힘은 농민, 민중들과 함께 하는 데에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매듭은 우리 스스로 옭아맨 매듭이 아니다. 우리를 옭아매려는 세력들에 기인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듭을 푸는 일이다. 쉽지 않다. 영원히 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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