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을 흐르는 강의 작은 섬에 텃밭이 있어요.

  • 입력 2013.02.10 18:57
  • 기자명 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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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용산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도심에 아주 가까운 곳이죠. 버스 타고 북쪽으로 몇 정거장만 가면 옛 시청사가 있고, 그 뒤로는 유리로 외벽을 장식한 거대한 시청 건물, 고층의 빌딩들이 즐비합니다. 그와는 반대방향 남쪽으로 가면, 한강으로 향하는 대로가 뻗어있죠. 버스들은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을 때는 한강대교를 한껏 속력을 내서 달립니다.

몇 년 전 한강르네상스를 추진하던 서울시는 한강의 다리들 중간에 한강을 조망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만들더군요. 저는 한 번도 그 카페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오십이 다 되어 가도록 한강대교를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죠.

한강대교에 있는 카페는 왕복차선 양옆으로 위치해 있는데, 견우카페, 직녀카페입니다. 재미난 발상이죠. 차들은 쌩쌩 달리고 횡단보도도 없고 둘은 만날 수 없이 건너편에서 서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견우, 직녀 카페가 있는 한강대교의 한가운데 노들섬이 있습니다. 예전에 버스타고 지나다닐 땐 그곳에 테니스장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한강 한가운데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죠.

그 노들섬을 많은 예산을 들여 서울시에서 개발한다고 하여 말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장이 바뀌고, 노들섬 개발은 백지화 되고, 그곳에 텃밭을 만든다고 하여 뚱딴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접근 불가능해 보이는 그 곳까지 누가 농사를 지으러 갈까 남의 일 같았습니다. 옛날, 소수의 사람들이 테니스 치던 광경처럼 무심히 지나치게 될, 그런 창밖 풍경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2월쯤 동네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들텃밭을 분양한다고, 그곳에서 텃밭농사를 짓겠다고 신청들을 하고, 분양받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씨를 뿌리고, 주말마다 물을 주러, 거름을 주러 부지런히 드나들었습니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밭에 나갈 만큼 한가롭지 못했던 어른들이 슬슬 꾀를 부리기 시작하자 아이들 몇몇이 저희들끼리 텃밭에 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뒤늦게 가 보았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분양받은 땅이 없어 아쉬운 마음만 있었습니다.

여름이 지날 무렵, 상추며 참외 등을 수확한 땅은 김장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미처 돌보지 못하는 땅들이 생기고, 말라 있는 땅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아주머니들이 심은 무, 배추들의 싹을 보니 늦었지만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버려진 땅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밭을 갈고 물 길어 나르고 땅을 부드럽게 한 다음 시장에서 씨를 사다 뿌렸습니다. 6,7살 아이들도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나르고, 흙투성이가 되어 밭에서 잘도 놀았습니다.

한강의 남쪽이 붉게 노을지고, 곧이어 초승달이 뜨고, 이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새삼스러웠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뿌린 씨앗은 수확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너무 늦게 씨를 뿌린 탓도 있었고, 그 후로 너무도 바빠서 제대로 돌보질 못했습니다. 저는 못갔지만 함께 씨를 뿌린 이웃이 싹이 트고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김장은커녕, 겉절이도 못할 정도였죠. 씨앗들에게 미안합니다. 함께 텃밭을 드나들던 이웃은 일찌감치 모종을 심고 정성을 들이더니 제법 수확을 거두었죠. 그 중에 가장 크게 자란 무와 무청을 삶아 제게 주었습니다. 저도 올해는 성실한 도시농부가 되어 볼까 합니다. 보답을 해야죠^^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 상자텃밭에서 푸성귀를 따 먹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제게 노들텃밭에서의 짧았던 농사(?)는 강렬한 경험입니다.

또 다시 노들텃밭 분양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제대로 좀 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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