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

  • 입력 2013.02.10 18:51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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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거의 시내에 나와 지내는 날이 많다.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한 쪽에 지역문인들을 위한 집필실도 마련되어 있어 주로 거기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지낸다. 시내에 있는 셋집은 아이들 학교 때문에 얻어놓았는데, 상가 건물의 사층이다. 양쪽 살림에 가랑이가 찢어지지만 나로서도 시내에 거처가 있어 여러 모로 요긴하게 쓰는 편이다.  

그런데 셋집에서 자다보면 늘 새벽 네다섯 시쯤에 잠을 깨게 된다. 바로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다. 그 집은 중국음식점인데 홍합을 잔뜩 넣어주는 짬뽕은 꽤 소문이 나서 늘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새벽에 들려오는 소리는 다름 아닌 홍합을 씻는 소리이다.

겨울철이라 창문을 꼭꼭 닫아두는데도 홍합 씻는 소리는 퍽이나 크게 들린다. 마치 동해안 어느 바닷가의 자갈 해변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소리 같다. 꽤 여러 해 이웃해 살면서 나는 그 집 주인들을 조금은 알고 지내게 되었다.

젊은 부부와 남편의 동생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인데, 세 살배기 아이 하나까지 네 식구가 식당 위층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이층 건물을 다 세 내어  아래층은 식당, 위층은 살림집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위층에 살게 된 것은 불과 일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 전에는 식당에서 생활을 했다. 결혼하자마자 가진 돈 전부를 털어 식당을 차리고 나자 살림집을 얻을 여유가 없었단다. 식당에서 먹고 자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 년만에 위층에 전세를 들 수 있었다. 남편과 시동생까지 젊은 세 식구가 옹색하게 살면서 아이도 태어났고 갓난아이를 식당에서 키우자니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그래도 젊은 아낙은 늘 수더분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새벽마다 홍합을 씻는 이는 남편이다. 이 추운 겨울에 찬물에 손을 담그고 거의 한 시간이나 홍합을 씻자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새벽에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깰 때마다 가난한 서민들이 살아가는 힘겨움에 일종의 동지의식이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장사가 제법 되어 돈을 모으는 그 식당은 나은 편이다. 내가 사는 건물의 아래층에는 이년 전에 치킨집이 하나 생겼다. 오픈하는 날에는 대형 홍보차량에 바람잡이 하는 아가씨들까지 춤을 추어가며 요란을 떨었다. 밀가루 집을 입히지 않고 닭을 오븐에서 구워낸다는 유명 브랜드의 치킨은 다른 데 비해서 비싼 편이었다. 기름에 튀겨내는 닭보다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치킨이라고 광고를 하는데, 아직 민도가 낮은 지역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는 듯하다. 치킨 집 사장 역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인데 인상이 아주 좋다. 나는 딱 한 번밖에 치킨을 팔아주지 못했지만 가끔 들러서 안주 없이 생맥주 한 잔을 마시곤 한다. 그러면 주인 총각은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과자를 몇 개 접시에 가져온다.

거의 언제나 손님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짐작했던 대로 장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나는 사실 알려고만 하면 하루에 닭을 몇 마리나 파는지 셀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문을 받는 즉시 오븐에 굽는 냄새가 곧바로 내가 사는 집까지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단 한 번도 냄새가 올라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주인 말로는 근근이 이년을 버텨왔는데, 올해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그에게 어서 돈을 벌어 장가 먼저 가라는 시답잖은 덕담을 건넨 적도 여러 번이어서 시름에 잠긴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오늘은 큰딸의 졸업식이다. 가난한 농군의 딸임을 알고 등록금이 헐한 국립대로 가더니 이런저런 장학금을 받아 실제로 학교에 내야 할 돈은 전혀 없게 되었다. 다행스럽고도 기특한 일이다. 하지만 굳이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을 포기하면서 한 결정이라 애비된 자로서 한 가닥 비애가 없을 수 없다.

 졸업식 끝나고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 때와 마찬가지로 짜장면을 먹잔다. 오늘은 큰맘 먹고 이웃한 두 집에서 짜장면도 먹고, 구운 치킨도 시켜 딸애의 졸업을 축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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