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농민] 17. 양평 노국환

팔당 유기농업 역사를 한 몸에

  • 입력 2013.02.07 19:43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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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냄새 많이 나지요?” 탄 냄새를 잔뜩 풍기며 소탈한 모습으로 등장한 노국환씨. 그는 경기도 양평군에서 감자, 오이, 옥수수를 주작목으로 제철채소를 유기농으로 짓고 있다. 노지농사만 짓다 보니 5월부터 10월은 농사짓고 나머지 여섯 달은 논다. 기왕 노는 거 먹고살거리도 만들고 함께 놀려고 체험활동을 시작했다. 노씨를 만난 날도 막 아이들과 왕겨숯 만들기 체험을 하고 난 직후였다.

노씨네 집에 체험활동을 하러 온 아이들은 YMCA 아기스포츠단 졸업반이자 노씨의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이다. 그는 2004년부터 내가 먹는 것 나눠 먹는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작게 꾸러미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7년 YMCA 등대생협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제는 4명이서 제철채소작목반을 꾸려 매주 250여개 제철꾸러미를 보내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교류활동은 이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아기스포츠단 졸업반의 졸업여행지가 되었다.

수북이 쌓인 눈으로 이글루 만들고, 두부콩 갈아서 아궁이에 올려 두부 만들고 고구마도 굽고, 밤나무 잘라서 윷가락도 만들어본다. 안 자려는 아이들 억지로 재우고, 다음날도 눈썰매 타고, 얼음썰매 타고, 왕겨숯 만들기까지. 노씨의 체험활동 원칙은 “자연에서 논다”이다.

▲ 경기도 양평에서 감자, 오이, 옥수수 등 제철채소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는 노국환씨. 팔당 유기농역사의 산 증인이 됐다.

“할 일도 없는데 가자고 손에 이끌려 정농회 수련회에 간 것이 유기농과 첫 만남이었어요.” 노씨가 유기농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어쩌다보니 흘러흘러였다. 대학 졸업하고 1985년 겨울, 같은 동네 사람이었던 정상목씨 권유로 가게 된 수련회를 시작으로 유기농과 인연을 맺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유기농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기농은 부자들 주는 것으로 생각해 여러 명이 먹을 수 있는 관행농을 지었다. 다만 관행보다 농약을 덜 쓰는 정도였고 의도치 않게 약 칠 때를 놓쳐서 무농약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다 약을 하지 않아도 수월한 작물을 알게 되고 시금치를 무농약으로 재배했다. 마침 한살림에 납품하는 한솔공동체에서 물량이 모자랐는지 “농약 안 쳤으면 팔아줄게”라고 해서 첫 공급을 시작했다. 한번 납품하고 나니 농약치는 게 양심에 찔리고 그분들과 관계가 깊어지면서 유기농으로 전환하게 됐다.

그렇다고 노씨의 유기농역사가 물 흐르듯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사는 양평군은 최근 4대강으로 홍역을 크게 치른 지역이다.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지역에 묶여서 지역주민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농사뿐. 외지인이 보기에 아름다운 강이 주민에겐 원수 같은 강이었으니 행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팔당 상수원 지역에 친환경 농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팔당상수원친환경농업육성사업’이 지역민의 피해의식과 갈등이 끝에 이뤄졌다. 지원은 수혜지역인 서울시와 농협중앙회가 맡았다.

육성 사업에 앞장섰던 이들은 ‘팔당상수원유기농업운동본부’를 꾸렸고, 노씨는 창립멤버로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만 8년을 실무자로 일했다. 2004년에 마을로 돌아가 유기농사도 짓고, 마을이장도 맡고, 마을에서 체험마을인 ‘질울 고래실마을’을 운영했다. 그렇게 유기농을 지은 지 20년이 훌쩍. 농사야말로 어느 일보다 성심을 다해서 생명을 키우는 일이라 생각해 ‘농민이라면 유기농’이라는 신념으로 계속 유기농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노국환씨는 “서글픈 현실이 있다”고 했다. “유기농이 치열한 경쟁구도에 들어가 경쟁력을 갖춘 농민만 요구받는다. 소농은 못 사는 세상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기농 가격이 십년 전과 똑같은데 가격을 낮춰달라는 압박은 심해지고, 소비자도 유기농 말고 무농약을 더 찾는다는 것.

유기농가도 규모화와 경쟁력을 요구받는 요즘. 노씨는 지난해부터 팔당생명살림 영농조합법인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 근교라는 이점을 이용해 농촌체험과 지역판매를 높이려 하고 있다. 농사규모가 작고, 생산기술이 특출 나지도 않고, 내놓으라는 농산물이 없어 산지에도 뒤처지고 있는데다 경쟁력을 갖추기 녹록지 않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또 4대강으로 흐트러진 조직기반을 다시 잡는 것이 올해 그의 목표이다.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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