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빚·채워지지 않는 통장…“농사짓기 힘들다

[인터뷰] 전남 해남 배추농가 강경권 씨

  • 입력 2013.02.01 10:00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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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해남 배추농가 강경권(53)씨.
“지난해는 배추를 밭에서 거진 다 썩혀 버렸어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되겄지 되겄지 하면서 계속 하는 수밖에요.” 전남 해남군 산이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경권(53)씨는 무겁게 입을 뗐다.

유난히 배추가격이 폭락했던 지난해, 겨울배추 주산지인 해남에서는 대부분의 배추가 밭에서 그대로 썩어버렸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량 보다 많은 수입배추가 국내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수확조차 하지 못한 배추 때문에 다음 작물을 심을 수도 없어 적자는 계속되고 빚은 쌓여만 갔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배추 정식 시기인 9월에는 태풍이 연달아 오면서 정식마저 원활히 되지 않았다. 때문에 생산량이 줄어 현재 출하중인 배추 가격은 높은 편이지만,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상품성이 떨어져 영양제를 계속 쓰다 보니 생산비용은 고공행진, 인건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보통 5~6포기면 20kg 한 박스가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10포기나 들어가더라고요. 양 자체가 줄었으니 결론적으로 소득은 줄어든 셈이에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비싸다고만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죠.”

강씨는 현재 3만평가량의 배추농사를 짓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결국은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가진 땅이 없으니 임대농으로 시작했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지어보겠노라 경운기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을 무리해서 준비했다. 농사를 지어 갚아나가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그러나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어려워질 뿐이었다. 재배 면적이 줄어들 때는 가격이 좋고, 가격이 좋아지면 또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듬해 가격이 폭락했다. 악순환은 계속됐다. 올해 한파로 인해 배추 가격이 올랐어도 생산비가 배 이상 들어가는 바람에 통장은 여전히 마이너스를 기록할 뿐이다.

“이자만 겨우 상환시키는 상황의 연속이죠. 농사를 짓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 있으니 포기가 쉽지 않아요.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기대심리에 계속 하는 거예요. 마이너스 통장으로도 안 되면 연체이자 물어가면서 연명하고….”

자재를 외상으로 받을 수 있는 농협에서 자재 등을 가져다 쓰고, 연말에 농사지은 것으로 외상값을 정리하고 나면 생활비만 겨우 남는 수준이다.

부인은 몇 년 전부터 간호사 일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해 졸업한 첫째와 대학에 다니는 둘째까지 뒷바라지하려니 농사일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농사일.

그러나 이미 마련한 장비들은 팔아봤자 헐값이다. 다 정리하고 도시에서 작게나마 방앗간을 운영하고 싶지만 모두 처분해도 부족할 것 같아 이내 그런 마음 다잡고 농사일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 유지라도 되면 계속 버텨보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하고 또 다짐할 뿐이다.

돈이 될 만한 작목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심어보기도 했다. 수수 가격이 높게 나오면 수수도 심어보고, 고추 가격이 높으면 고추도 심어보고. 재작년까지는 그나마 소득작물이었던 감자도 심었지만 지난해 태풍 이후 계속 비가 오자 이마저도 접어 버렸다.

태풍이 크게 오니 멀칭비닐은 날아갔고, 평년보다 빨리 찾아온 추위에 이웃에서 심은 감자는 모두 얼어버렸다. 안 심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쌀 생산기지를 마련하기 위해 개발된 산이면 간척지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지금은 사료단지, 골프장 등으로만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간척지가 개발되면서 산이면에 땅 투기바람이 불었다. 실거주인이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30%도 채 안 된다. 농산물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임대농은 인건비 따먹기거든요. 어쩌다 가격이 올랐을 때 잘 팔아야 겨우 남기는 거죠. 농업 문제가 절대 투기의 목적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입산도 마찬가지로, 저들 나라도 먹고 살아야 하니 생산량이 적을 때는 비싼값에도 팔지 않을 수 있어요. 실질적으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먹을거리더라고요.”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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