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 입력 2013.02.01 09:15
  • 기자명 권혁주 충남 부여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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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주 충남 부여 농민.
연말연시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나도 금연이니 운동이니 하는 소소한 것들과 싸우며 과도한 결심과 처참한 실패를 해마다 반복해 왔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지난 한해 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지키지도 못할 무모한 새해 계획조차도 세우지 못하고 지금까지 와버렸다. 온 국민을 멘붕으로 몰아넣었던 작년 대통령선거에 대한 후유증이라고 애써 둘러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느날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졌다. 우리집엔 아내가 어릴때 치던 피아노가 있다. 아이들 교육에 필요할 듯해서 몇해전 처갓집에서 공수해온 것이다. 하지만 애초 목적과는 다르게 각종 살림살이로 포위당해 피아노 주변은 발디딜틈도 없을 지경이다. 애써 가져온 피아노가 집한구석에 방치된 것이 아깝기도 하고 잘 활용하면 여러모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피아노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식함에서 나오는 용감함에 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할 지경이다.

우선 책부터 샀다. 피아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기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적당한 피아노 교재를 구입해 읽는 중이다. 바이엘, 체르니같은 어릴적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불편한 이론서가 아닌 구음(口音)과 리듬위주의 생활반주 실용서라고 하니 이를 굳게 믿은 것이다.

이젠 피아노 주변을 말끔히 치우고 난 뒤 피나는 연습을 통해 경지에 이르는 일만 남았다. 반주가 가능한 악기라고는 기타밖에 없지만 음악적 재능만큼은 탁월하다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아직도 굳게 믿고 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 농사짓느라 활동하느라 각박해져버린 문화적 감수성을 복원시키고자 하는 거창한 꿈도 함께 말이다. 반짝반짝 작은별, 젓가락행진곡 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피아노 선율에 담아 아이들과 노래하고 싶다. 때때로 살며 부대끼며 상처받은 내 자신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누군가에게 또 그렇게 해주고 싶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후에 피아노 배우기 프로젝트는 너무 과도한 목표가 아니었냐고 그냥 하모니카 배울 걸 그랬다고 처절하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아내와 지인들의 비아냥이 벌써 머릿속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 시간이 즐겁다. 참 오랜만에 여유롭고 풍요로운 감정들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넌 내 몸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 그 어떤 사랑조차 꿈도 못 꾸고 / 이내 널 그리고 또 원하고 난 니 이름만 부르짖는데 / 다시 돌아올까 니가 내 곁으로 올까 /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주면 우리 너무 사랑한 지난날처럼 / 사랑하게 될까 그 때의 맘과 똑같을까 / 계절처럼 돌고 돌아 다시 꽃피는 봄이오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피아노 반주로 ‘꽃피는 봄이 오면’이란 나의 애창곡을 가족들에게 불러줄 수 있을까? 이 노랫말처럼 과연 척박한 농촌과 우리네 삶에도 꽃피는 봄이 올 수 있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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