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끝, 바다에서

  • 입력 2013.02.01 09:0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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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결혼한 지 꼭 이십 년째다. 햇수를 헤아리며 무슨 기념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어, 남들이 짜장면이라도 먹는다는 결혼기념일조차도 챙겨본 적 없었는데, 올해는 우연히 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하룻밤이라도 묵고 오는 여행은 신혼여행 이후에 처음이었다. 요즘 세상에 드문 일일 것이나 시할머니와 시부모 모시고 농사지으며 아이 셋을 키우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대학입시 끝나고 놀기에 바쁜 큰 애는 빼고 네 식구가 제주도 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신이 난 아이들과 달리 나는 비행기 타는 게 그다지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몇 해 전 저가 항공이라는 소형 비행기를 탔다가 난기류를 만나 얼마나 비행기가 흔들리는지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날이 쾌청하여 무사히 제주공항에 내렸고 곧바로 모슬포로 향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제주도가 아닌 마라도였다. 

  6년 전에 나는 마라도에서 한 달을 보낸 적이 있다. 주민이 오륙십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인 마라도에도 꽤 큰 절이 하나 있다. 그 절에 오랜 지인이 스님으로 있어 요사채의 방 한 칸을 빌어 소설을 쓰며 지냈다. 이번 여행도 스님의 간곡한 권고로 갑자기 이루어진 길이었다. 아이들과 며칠이라도 여행을 하라는 말씀과, 먹고 자는 경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점이 비교적 쉽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슬포 항에서 마라도를 오가는 배는 육년 전보다 훨씬 큰 대형 여객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겨우 이십오 분 거리에 불과한 배 삯도 왕복 만오천 원으로 꽤나 비싼 편이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마라도가 여러 차례 소개된 탓인지, 아니면 국토 최남단 섬이라는 국지적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평일인데도 배가 거의 만원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마라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많은 건물들이 새로 들어섰고 신축 중인 곳도 여러 곳이었다. 이제 마라도 하면 먼저 떠오르는 짜장면 집이 십여 군데도 넘어보였다. 심지어 유명 프랜차이즈의 편의점도 들어와 있었다. 다만 아귀다툼처럼 늘어나 거의 흉물에 가깝던 관광 카트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서로 관광객을 유치하려 경쟁이 치열해지다 못해 살인사건까지 일어나자, 도에서 금지시켰다고 했다. 전에는 낚시꾼들이나 들어오던 섬에 사람들이 밀려오고 돈이 돌자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인성의 타락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천천히 걸어도 사십 분 정도면 충분한 섬 둘레를 식구들과 함께 걸었다. 신기한 풍경에 연신 사진을 찍던 아이들이 바닷가 바위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보기는 봤어도 이름을 몰랐는데 아이들은 그것이 거북손이라고 했다. 삶아서 속을 내먹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충청도 산골 놈들이 어찌 그런 걸 아느냐고 물었더니 일박이일에서 보았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쯤을 쉬엄쉬엄 돌고 나니 마지막 배가 나가는 시간이었다. 배가 나가면 섬은 갑자기 물속에 잠긴 듯 고요해진다. 지금부터는 섬에 사는 주민과, 몇몇 숙박을 하는 낚시꾼들뿐이다. 우리는 한창 제철이라는 방어회를 넉넉히 떠서 절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한라산 소주에 방어회를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바닷가로 나가 정말로 거북손을 두어 되나 따왔다. 얼굴 가득 기쁨이 넘치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것을 삶아 속을 까보니 기실 먹을 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바다 내음만큼은 입 안 가득 부족함이 없었다. 
 

  밀린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밤은 깊어가고 한라산 소주는 달았다. 틈틈이 밖으로 나와 듣는 밤바다의 파도소리도 왠지 아득하기만 했다. 다시 또 마라도의 거센 파도소리를 들을 날이 있을 것인지. 다만 아이들은 밤이 되자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고, 심심한데 할 게 없다고 툴툴거렸다. 이 아이들이 언제나 이 겨울바다를 이해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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