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인정하는 방법을 찾자

  • 입력 2013.01.25 13:42
  • 기자명 이경희 서울여성회 도시소비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경희 서울여성회 도시소비자
작년에 처음으로 매실액기스를 담궈 보았다. 우연히 매실액기스 맛에 반해서 충동적으로 항아리까지 사서 매실액기스 담그기를 시도한 것이다. 저농약으로 농사지은 매실을 구입하고 같은 양의 설탕을 사고, 매실을 씻어 물기 빼고 설탕과 일대일로 켜켜이 재어놓고 때때로 저어주며, 마음졸이고 설레는 기다림의 시간 석달을 보냈다.

그리고 처음인데 나름 ‘성공!’이라는 뿌듯함, 찬바람 부는 날 따끈한 매실차 한 잔의 여유도 쏠쏠한 즐거움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든 생각은 ‘이거 참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거다. 매실 손질과 재는 작업에 하루가 꼬박 걸린 것은 물론이고 숙성될 때까지 계속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매실액기스의 양을 보니 그냥 사먹는 게 더 싸다는 타산이다. 순간 ‘뭐하러 이런 성가신 일을 벌였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음식을 만드는 일들이 대게 그렇다. 준비 과정은 참 손이 많이 간다. 한끼 식사를 챙기는 일만해도 재료 손질에서 요리하고 그릇에 담아 상을 차리고 먹은 후 잔반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일련의 과정을 한 차례 하고나면 온 몸에 기운이 쏙 빠질 정도다.

하지만 그 일을 내가 직접 하지 않았을 때는 그 수고로움이 잘 보이지 않고 내가 하더라도 중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보다는 바쁜 일상의 군더더기 같은 귀찮고 성가신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외식은 매력적이고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럼 이 저렴한 외식 혹은 저렴한 가공식품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많은 사람들의 값진 노동의 시간들이 모아져 완성된다. 그것의 시작은 물론 농업이다. 나의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농사는 ‘자식에게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지금도 겨울이면 기름값 걱정 때문에 찬물에 설거지를 하는 생활을 하고 계신다. 이분들의 고단한 노동의 결과물들은 어느날 마트에서 미끼용 세일품목이 되고 어떤 날은 과잉 생산된 농산물로 나라의 골칫거리가 된다.

지난 연말 “너는 김치 안 필요하니?”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 문득 그동안 시골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공급받은 먹을거리들을 돌아본 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이 보내주는 쌀과 김치, 된장, 고추장을 당연한 듯이 받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우리가 먹고 사는 가장 기본인 먹을거리가 어디서 누구의 어떠한 노동으로 생산되는가는 보지 않고 당장 나의 오늘 한끼를 좀더 값싸고 편리하게 해결하는 방법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들이 있다. 그중 나에게 힘든 어떤 일이 다른 누군가의 힘든일로 대체 되고 있지 않은지, 누군가의 가려진 노동을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의도하지 않게 그 누군가에게 차별과 고통을 주게 된다.

아동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돼지책’이라는 동화가 있다. 동화 속에서 엄마는 이름이 없다. 남편 피곳씨와 두 아들 패트릭, 사이먼은 아주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 다니고, 엄마는 집안일을 혼자 다 하고 회사도 다니는데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이 일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건을 계기로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동화 속 아빠와 아이들은 엄마를 미워하고 괴롭힐 마음이 없었지만,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엄마를 힘들게 한 것이다. 집안일은 식구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인데 그걸 왜 여자가 다 해야할까?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이렇게 성차별을 낳고 차별을 받는 사람을 아주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아빠가 다니는 회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데 엄마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누군가의 일은 더 중요하고 누군가의 일은 덜 중요하다는 생각 또한 고정관념이고 차별이라는 이야기도 해준다.

어떤 일을 여성의 일로 정해 놓고 그건 별로 가치없는 일이라고 평가해 버리는 성차별 사회에서 남성도 여성도 함께 행복하기 어렵다.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들이 정당한 가치로 평가받고 그 역할을 공평하게 나누고 더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찾아갈 때 더불어 행복한 삶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 중에 하나는 먹는 일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노동들을 인간 삶의 가장 기본 영역의 소중한 노동으로 가져와 연관된 모든 사람의 노동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공평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