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구충이야기

  • 입력 2013.01.25 13:39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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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때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덕무와 박지원사이에 오간 편지속에 나오는 벌레이름이다. 이덕무가 耳目口心書란 글을 썼다. 연암이 이를 보려고 세 번이나 청을 하고서야 글을 보았다.

그러나 이덕무는  빌려준 지 하루 만에 책을 찾아오려고 "귀와 눈은 바늘구멍 같고 입은 지렁이 구멍 같으며 마음은 겨자씨만 하니, 세간의 웃음을 자아낼 뿐이다"라는 척독(짧은 편지)을 보낸다.

이에 박지원이 그 척독에 “이 벌레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며 답변을 채근하였다. 이에 이덕무는 "한산주 조계종 본탑 동쪽에, 옛날부터 이씨가 벌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벌레의 이름은 섭구이며, 성질은 겸양을 잘하고 숨기를 잘 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덕무는 자신을 '섭구'와 같다고 겸손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박지원은 이덕무를 '섭구충'에 견주어 '산해경'을 보충하는 형식의 글을 지어 보낸다.

이글은 시대의 변화에 선비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섭구를 파자 해보면 입구(口)하나에 귀이(耳)가 셋 눈목(目)이 둘에 마음심(心)이 하나로 되어있다. 입은 하나요 눈이 둘이요 마음이 하나인 것은 맞는데 귀가 셋이다. 섭구는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여 감히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귀가 보통과 달리 하나 더 있는 것에 초점이 있다. 뭔가를 더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한 반감이 표현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시 정조는 새로운 글쓰기를 주창하는 이들을 경계해서 문체반정을 일으킨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유주의가 선비들에게 확산되면 봉건체제를 흔들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따라서 연암이나 이덕무 등의 18세기 문체혁명을 일으킨 수많은 선비들이 고단한 삶을 살다가 갔다.

때로는 자위하기도 하고 때로는 체제불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기존의 글쓰기형식을 거부하며 세상의 이치를 새로운 형태로 사고하고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불운한 처지를 섭구라는 벌레로 둔갑시켜 처세로 삼으며 동시에 왕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것을 고대 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자는 소통을 담론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었다. 그런데도 인수위는 소통에 인색하다. 귀를 열개쯤 달아도 모자랄 판인데도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짬짜미, 불통 등이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매일 인수위에 사람들이 현안문제로 울부짖어도 들리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모양이다.

농수산식품부에서 식품을 떼어 낸다하니 섭구충들이 아우성이다. 식품이 농업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이며 진화라 할 수 있다. 시대를 거역하는 자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섭구충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당선자는 귀를 열 개쯤 갖고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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