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협동으로 지역순환형사회 만들어야”

<23>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전 소장

  • 입력 2013.01.21 09:36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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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우리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30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현장을, 현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인 안동으로 귀촌해 ‘생명창고 지역순환형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2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농어연) 전 소장의 발자취다.

<정리=전빛이라 기자·사진=한승호 기자〉

한도숙(이하 한) : 서울에 있는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학문적으로 농업, 농민을 접하다가 현장에 직접 내려가 접해보니 어떤 점이 다르던가.

▲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안동으로 귀촌한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전 소장. 그는 소비자와의 연대와 협동을 통해 진정한 자립을 하게 되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권영근(이하 권) : 지난해 두 번의 선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동에는 선거 운동이 없었다. 무척 놀랐다. 서울과 농촌간 정보의 비대칭이 굉장히 심각하다. 그런데도 농촌에서는 고립됐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80년대에는 사회교육이 많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사회교육이 거의 사라졌다. MB정부에서 만든 종편방송, 편파적인 공중파 방송에서 일방적으로 같은 말을 쏟아낸다. 처음엔 의심스럽지만 모두가 그렇게 주장하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교육을 안 하는 단체는 조직원 내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회교육의 중요성이다.

한 : 농어연에서 15년간 소장으로서 연구소를 책임지고 이끌었다. 총 30여년을 연구소에 계셨는데, 지난 30년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권 : 농어연의 전신은 1965년에 만들어진 농업근대화연구회다. 연구회를 하는 동안 인혁당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 잡혀갔다가 사회로 나온 사람들이 새로 만든 것이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다.

연구회는 농민운동의 씨앗이라 말할 수 있다. 농업근대화연구회는 한국 농업에 큰 역할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협업농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국내 농업에서 소작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이는 1988년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예를 들면, 삼성이 대규모 농장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제지해 재벌 축산을 막고, 이를 통해 영농조합법인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개방정책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수입 농산물에 대응하려 했다. 그래서 소비자가 좋아하는 농산물을 생산해 소비자와 연대하고자 생각했다. 그러면서 생협이 만들어졌고, 1997년도에 환경농업 육성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순환과 다양성, 관계성 등 협동을 이야기해야 한다. 요새 협동조합이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 ‘계’ 문화와 닮아 있다. 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연구를 풍부하게, 또 쉽게 해야 한다.

한 : 농업정책에 있어 견제 역할은 충분히 하셨다. GMO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지역순환형 농업도 고집스럽게 주장하셨다. 앞으로 한국농업의 희망은 어디에 있겠는가.

권 : 첫째는 식량자급률이다. 다시 말하지만 소비자와의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다. 21세기 이념은 ‘연대’다. 올바른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까. 소비자가 싫어하는 것을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소비자 교육도 필요하다.

이에 앞서 한국의 문제를 말하자면 바로 ‘산업화’다. 이건 잘못된 말이다. 산업화 핵심은 공업화다. 산업화라고 하면서 농업을 1차 산업이라고 해버린다. 그러면 안 된다. 사실 현재의 농업은 공업화 돼 있다. 이를 벗어나야 한다. 농업의 공업화를 막아야 한다.

공업화의 핵심은 공장 내의 효율성만을 따진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폐수가 바깥으로 나오면 환경이 오염된다. 공업화로 경제성장이 됐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외부 불경제라고 말한다. 다른 것을 못살게 하면서 공업화가 이루어진다. 농업이 공업화 되는 것도 똑같다. 다른 자연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야 공업적 농업이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작목을 해도 똑같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GMO농산물과 동물약품, 제초제 등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내분비 호르몬을 교란시키고, 생명에도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온다. 그렇기에 공업화, 산업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와의 건강한 연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렇다고 쌀 중심주의로만 하면 곤란하다. 이는 일제 잔재다. 우리나라가 옛날에는 논농사 중심이 아니라 밭농사 중심이었다. 일본이 쌀을 가져가기 위해 간척하고 밭을 개간해 논농사를 발전시켰다. 쌀농사 중심이라는 것은, 농업에서 일제잔재 청산을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역 환경과 순환관계를 형성해야 극복할 수 있다. 이게 순환농업이고 전통농업이다. 그래야 지역 전체가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다양성 있는 작목을 해야 한다. 쉬운 말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자는 말이다.

두 번째는 순환농업을 통한 ‘협동’이다. 작목의 다양성을 실현하면 소득이 줄어드니 협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역순환농업이 되고, 자립이 가능해진다.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농민과 소비자간 연대는 필수다. 이런 것이 소위 경제민주화고, 사회적 경제다. 순환농업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지역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생산 시스템을 뜻한다.

환경을 무시할 순 없다. 반드시 환경을 고려한 농업생산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러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한 : 전통적 가치는 퇴출당했고, 서양의 합리적인 사상이 들어오면서 사회 분위기가 ‘돈만 벌면 된다’로 가고 있다. 1980년 개방농정이 시작되면서 정부가 5개 농가 이상이 뭉친 작목반에 탈곡기, 콤바인 등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 농기계들은 공동사용이 아닌, 농가가 나눠 소유했다. 선두그룹이 자기를 희생해야만 공동계산, 공동판매가 겨우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안동이라는 지역이 아직 전통사회를 중시하고 선비의 후계자들이 아직도 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동에서 제2의 인생을 꾸리고 있는 권 선생이 보기에 협동조합의 가능성이 보이는가.

권 :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일제가 우리 농민들의 ‘계’ 문화를 철저히 깨부수면서 우리는 유치원서부터 대학교까지 협동조합에 대해 배우지 않게 됐다. 전통적인 계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계가 돈놀이 하는 것처럼 변질 된 것이다.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으려면 우선 일제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이 적어도 정직하게 농사를 지으면 생협이 지원해주고, 생협이 늘어나 이들이 연대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이 협동조합이다.

아스팔트 농사만 짓는 것이 농민운동이 아니다. 자기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농협중앙회를 깨부수기보다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협이 올바로 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농협이 모여 제2의 농협중앙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안동으로 귀향한 이유 중 하나는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더 빨리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알아야겠더라.

한 : 안동으로 내려가 안동농협과 함께 협동조합 관련 책을 출판하는 등 벌써 성과를 내고 있다. 봄이 되면 씨도 뿌리고 집도 고쳐야 할 텐데, 안동에서의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권 : 우선 안동시농민회에 가입했다. 이제 시작이다. 사실 내가 쓴 글은 독창적으로 생각해서 쓴 게 거의 없다. 문제의식들은 다 현장 농민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묶어서 책을 내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내 글이 어렵다는 평이 많다. 쉽게 풀어 쓴 책을 쓰고 싶다.

한 :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농업구상은 현재까지 드러난 것이 없고, 이명박 정권을 그대로 답습하겠다고만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농민들이 어떻게 극복해 새로운 농업을 만들어야 하나.

권 : 한국사회는 지식인들의 담합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익을 형성해 낸다. 지식인은 사회덕을 봤기 때문에 지식인이 갖고 있는 지식도 사회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나는 생명창고지역순환형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윤봉길 의사가 말한 생명창고. 농업이 생명창고다. 농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굉장히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이 거위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이를 살려내야 황금알을 낳는다. 답은 지역순환형 사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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