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아프면 가슴이 아퍼. 가슴이…”

홍성 최준호

  • 입력 2013.01.21 09:10
  • 기자명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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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9시에 최준호(32·장곡면 월계리)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2주 전에 태어난 송아지가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다른 축산 농가들에게 물어봐가며 약을 먹이고 주사도 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수의사를 불러 송아지를 살펴봤다. 수의사가 송아지에게 주사와 수액을 놓고 최씨가 다음날 놓을 주사를 받아 든 시각은 저녁 10시 반. 그래도 여전히 송아지가 어찌될지 안절부절 못하다.

“소가 아프면 가슴이 아퍼. 가슴이” 수의사에게 건네준 돈은 5만원. 홍성군에서 절반은 보조해주기 때문에 치료비가 적게 들었다.

최준호씨는 도시에서 목수생활을 하다 4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유기농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초보 농사꾼이다. 지금은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논 4,000평, 하우스 700평을 경작하고 있다. 암소 한우 2마리를 3년 전에 입식하기 시작해 지금은 어느덧 25마리로 늘렸다.

▲ 최준호 씨가 2주 전에 태어난 송아지를 어루만지고 있다.

영세한 농사규모…‘알바’는 필수

농사규모가 영세하다보니 소위 ‘알바’는 필수다. 목수생활을 하던 경력을 십분 활용해 바쁜 영농 철을 제외하곤 늘 하우스 공사장 일을 한다. 특히 지난해 태풍과 낮은 기온으로 농사를 망쳐 바깥일을 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난해는 농사로 번 돈보다 알바로 하우스 지어서 받은 품삯이 더 많았다”며 어려운 농업 현실에 헛웃음을 지었다.

최씨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네에 워낙 젊은 사람이 없다보니 동네반장 일도 해야 하고 자율방범대에도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아픈 송아지를 살펴보다 이내 트럭에 몸을 싣고 면내 자율방범대 사무실로 향한다.

최씨는 “시골에서 이장이나 반장 같은 것 정말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젊은 사람이 없으니까 거절도 못하고...”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시골 어른들이 TV를 설치해야 된다거나 눈을 치워야 하는 등 갖가지 일들을 다 제 몫처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청에 월계리는 제설작업이 힘들다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세요”였다.

방범대 사무실에서 동네 청년 셋이 모여 통닭을 시켜놓고 맥주 한잔을 걸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청년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일대는 ‘유기농의 메카’로 불린다. 일찍부터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과거 오산학교)의 영향으로 유기농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유기농 쌀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유기농을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단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힘들여 ‘풀과의 전쟁’을 치러도 돌아오는 몫은 형편없고 일손이 부족해 연로한 농민들이 그 고된 노동을 계속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기름 값 등 물가는 치솟지만 다른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유기농 쌀도 여전히 10년 전 가격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자연스레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규모화’ 뿐. 가진 것이 없어도 빚을 내가며 농사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 빚 갚느라 밤낮, 작목을 가리지 않고 ‘돈’되는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최씨는 소득다운 소득을 거두려면 규모화를 해야 하지만, 한 몸같이 따라오는 빚더미가 싫어 다른 청년들과는 달리 농사를 크게 늘릴 생각을 안 한다.

빚으로 밤낮 안 가려가며 일하는 것보다 적게 쓰고 적게 벌고 내 시간 많이 갖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적게 쓰고 적게 벌고 밤 12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씨는 “지난해 목표는 장가가는 거였는데 실패 했어”라며 웃곤 아픈 송아지를 돌보러 축사로 향했다.

최씨의 이튿날 첫 일정도 송아지 돌보기였다. 다행히 아팠던 송아지는 기운을 차렸다.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어미 소와 이른 아침부터 한차례 몸싸움을 하곤 툭툭 털고 다시 트럭에 몸을 실었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다주기 위해서다.

“아버지 어디가 아프셔서 병원 간대는겨?” “속이 얼얼하니 여기저기 몸이 다 안 좋아” 무뚝뚝한 최씨는 우스갯소리 같은 말로 6남매를 농사지어 키운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드러낸다. “이게 유기농 농사짓는 농민들의 결말이여. 관절염에 허리디스크에 여기저기 병 안 드는 곳이 없어”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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