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삶이 곧 긍정의 삶

“막막한 상황에서도 감사”한 김해경씨

  • 입력 2012.12.31 09:52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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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사? 바닥을 쳤다고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까요?” 감자는 너무 가물어서 알이 차지 않았다. 고추는 연이은 태풍에 고꾸라졌다. 배추는 예년보다 일찍 추워진 날씨 탓에 수확한 양보다 버려진 양이 더 많았다.

▲ 김해경(오른쪽)씨가 남편 남용식씨와 함께 새로 짓고 있는 하우스 앞에서 "아자아자"하며 웃고 있다.
고추 주산지로 유명한 충북 음성에서 4천여 평 규모의 밭농사를 짓고 있는 김해경(48, 음성읍 소여리)씨는 “올해는 농사 자체를 안 했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로 수확이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빚을 메우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도 해봤지만 늘어난 빚을 갚을 길은 요원했다.

그러나 귀농 11년차에 찾아온 위기 앞에서 그녀는 “막막한 상황이지만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력은 했지만 여러 환경 탓에 실패한 농사 그리고 빚을 지게 되는 현실을 직접 겪으며 온전히 “농가부채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정한 농민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6개월마다 농어촌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법도 한 데 학교에서 콩밭을 매고 멱을 감던 그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그 추억과 같은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추억은 곧 현실이 됐다.

그녀는 2002년, 남편과 함께 귀농했다. 첫 정착지는 경남 합천. 함께 귀농학교에 다닌 동기를 만나러 간 것이 계기가 됐다. 합천에서도 오지로 여겨지는 곳에 집을 얻고 3년간 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적은 규모(1000평)의 농사로는 자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논농사 보다는 밭농사를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고민할 즈음 농촌선교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는 차홍도 목사와 인연이 닿아 2005년 2월, 음성에 정착했다.

밭농사를 짓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이 이뤄졌다. 밭을 빌리고 노지 고추를 재배했다. 수확을 하면 오로지 직거래로 지인들에게 판매했다. 안타깝게도 최근 2년간 고추 수확량이 1/4로 줄었다. 반면 고춧값은 상당히 올라 1근에 2만5천원 선에서 거래됐다.

그러나 남편이 고정 고객들에게 혜택을 주는 차원에서 1근당 1만5천원에 제공하자 그녀는 순순히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물론 내년부터는 지속가능한 농사를 위해 조금 더 받겠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면 속이 상하죠. 그래도 모든 일은 물 흐르듯 이뤄지는 게 좋잖아요. 제가 지금 농사일을 잘하는 것처럼요.(웃음) 힘들긴 하지만 흙을 일구고 고추를 재배하는 순간순간 감사할 때가 너무 많아요. 귀농이 제 인생의 마중물인거죠.”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마중물처럼 귀농은 그녀의 내면에 잠재된 것들을 끄집어 올렸다. 음성에 정착한 이후 여성가족부 산하의 다문화가정 방문지도사로서의 삶도 시작됐다.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자녀가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그들과 일대일로 마주앉아서 교육하는 보람이 컷다. 첫 번째 천직으로 농민, 방문지도사를 두 번째 천직으로 손꼽을 정도로 그녀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김씨 부부는 비탈진 밭을 개간해 하우스 3동을 세우고 있다. 현재 농사 규모로는 고객들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탈진 밭을 평탄화 하는데도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세워지고 있는 하우스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 틀 것을 알기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긍정하는 삶의 자세. 그녀는 귀농을 통해 농부가 되었고 그래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실패를 겪고도 희망을 갖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란다. 흉년에 잠시 실망하고 속상해하면서도 다음해를 기약하는 희망, 땅을 갈아엎어도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가는 농민의 삶 자체가 ‘긍정의 삶’이란 것이다.

그녀는 2005년부터 음성도서관의 평생교육프로그램 중 하나인 ‘민화 그리기’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쉴 틈이 없어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10년 후엔 꼭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그리고 남편은 그녀에게 희망의 불씨를 제대로 남겼다. “부디 ‘작가’가 되시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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