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해 오는 해

  • 입력 2012.12.30 22:08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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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갔다.
  그렇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지난해도 역시 다사다난했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릴 수밖에 없다. 특히 기대를 걸었던 대선에서의 패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곡필을 일삼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며 더욱 절망을 느낀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보수 언론들이 쏟아낸 주문은 공약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공약 폐기를 요구하는 저들의 뻔뻔스러움에 분노가 치민다. 짐짓 나라의 재정을 걱정하는 체하는 저들의 속셈이 당선자에 대한 아부임이 너무도 빤히 보인다. 

 게다가 윤창중이라는,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으로 유명한 자를 새 정권 인수위원회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하였다. 그 자신 언론인으로 행세를 하고 세상에서도 그리 인정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리의 깡패보다 더 거친 극단론자다. 대선 전날, 문재인 후보를 창녀라고 욕을 하고 대한민국 중심세력, 운운하는 이론을 펼친 그의 글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그의 대한민국 중심 세력론에 의하면 이번에 야권을 찍은 1,5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주변부 국민이나 비국민이 되는 셈이다. 당선자의 첫 인사가 그런 인물인 것을 보고 경악하며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입만 열면 대통합 운운하던 당선자가 실은 그 어떤 관용도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포고령을 내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선 후에 즐거운 일이 생겼다. 막강한 국가권력이 나를 고발할 방침이란다. 대선을 엿새 앞두고 비교적 젊은 작가들 137명이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신문광고를 낸 적이 있다.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정권교체가 너무도 절박한 과제라는 생각으로 형편껏 광고비를 내어 경향신문에 전면광고를 싣게 된 것이었다. 내게도 후배가 연락을 해와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광고의 문안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의 고통이 더해지고 삶의 가치가 몰락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철거민들은 망루에서 검은 연기로 타올랐고 노동자들은 철탑 위에 둥지를 틀어야 했으며 누천년을 휘돌아가던 강은 혼탁한 수로가 되었습니다.

유례없는 언론탄압이 자행되었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어 우리 모두를 경악케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아름답기 그지없던 갯바위는 전쟁의 기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절망과 죽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자의 신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대통령을 절실히 원하고 그를 위해 정권을 교체하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 광고를 불법 선거운동으로 규정하였다. 딱히 주동한 단체가 없고 모두 개인적으로 참여한 것이라 광고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 전원을 고발할 방침이란다.

 나야 고작 삼만 원을 내고 이름을 올렸지만 참으로 재미없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던 터에 들려온 좋은 소식이다. 새로운 해를 국가권력과 맞서 싸우는 것으로 시작하다니, 이 또한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법이라는 게 대개 지켜져야 할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할 수는 없다. 더욱이 헌법조차도 양심의 자유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를 다루는 작가들에게 법조항 따위를 들이밀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은 비웃음뿐이다. 참여한 작가들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즐겁고 재미있게 대처하고 있다.

혹시 벌금형을 때린다면 납부를 거부하고 단체로 징역형을 받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역사의 사필귀정은 한없이 느리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깨우친 선거였지만, 새해에도, 또 앞으로의 오년도 저들의 의도대로 고약한 세월이 되진 않게 하겠다고 저마다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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